교육부는 지난 10일 ‘일부 과목 절대평가’(1안)와 ‘전 과목 절대평가’(2안) 두 가지 시안을 발표했다. 1안은 수능 7개 과목 중 영어, 한국사, 통합사회·통합과학, 제2외국어/한문 4개 과목을 절대평가로 치른다. 절대평가 과목을 현행 영어, 한국사에 2개 추가하는 단계적 확대안이다. 국어, 수학, 탐구는 상대평가로 남는다. 2안은 7개 과목 모두 절대평가를 적용한다.
◆ 2가지 시안 모두 문제… 1안은 '개악' 지적도
1안은 절충안 성격이 강하다. 수능 절대평가의 큰 방향성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어느 범위까지 적용하느냐가 관건이었다. 1안은 현행 수능에서 큰 변화를 주지 않았다. 2021학년도 수능에 신설되는 통합사회·통합과학은 모든 학생이 배우는 공통과목이다. 애당초 절대평가가 유력했다. 제2외국어/한문도 마찬가지. 상대평가에서 손쉽게 높은 등급을 받을 수 있는 아랍어 쏠림 현상 등이 꾸준히 지적됐다. 이들 과목의 절대평가는 ‘최소한’에 가까웠다는 얘기다.
1안의 경우 국어와 수학의 ‘풍선 효과’가 불 보듯 뻔하다. 전국진학지도교사협의회(전진협)와 전국진로진학상담교사협의회(진진협)는 지난 23일 기자회견에서 “1안은 수험생에게 ‘수학이 대입을 좌우한다’는 잘못된 신호를 보낼 것”이라고 걱정했다. 실질 영향력이 커진 상대평가 3개 과목의 한 두 문항에 대입 당락이 갈려 재수·반수도 늘어날 것으로 봤다.
2안에 대한 비판 역시 적지 않다. 전면 절대평가지만 수학은 가·나형을 유지했다. 문·이과 구분을 없애 융합형 인재를 길러낸다는 개정 교육과정 취지와 동떨어졌다. 한 교육계 인사는 “이번 수능 개편의 본질은 절대평가 여부보다는 개정 교육과정 취지 구현”이라고 짚었다. 문·이과 융합 취지를 살린 통합사회·통합과학은 수험생 학습 부담을 늘렸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기존 사회와 과학의 세부 과목들을 한 과목에 몰아넣은 탓이다.
1안에 비해 급진적 안으로 보이나 뜯어보면 한계가 많다는 게 전문가들 평가다. 고1 때 배우는 공통과목인 통합사회·통합과학, 한국사를 제외한 과목은 고3까지의 범위에서 출제한다. 기존 수능과 별반 달라진 게 없다. ‘공통과목 위주 절대평가’로 수능 부담을 줄이고 학생 중심 수업, 과정 중심 평가를 활성화한다는 목표 달성은 2안에서도 요원하다.
현장 교사들은 두 안 모두 문제지만 특히 1안은 ‘개악’이라고 지적했다. 정원 동인천고 교사는 “1안은 개정 교육과정 취지와도 안 맞고 학습·사교육 부담을 늘릴 뿐 아니라 학교교육 파행까지 불러올 것이다. 안 하느니만 못하다”고 말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과 사교육걱정없는세상도 각각 5등급제와 9등급제를 주장하는 차이는 있으되 큰 틀에선 2안을 ‘비판적 지지’ 했다. 전 과목 절대평가를 기본 방향으로 부족한 점을 보완하자는 취지다.
◆ "학종 개선, 고교학점제 연동 '큰 그림' 필요"
정작 무게중심은 1안에 쏠려 있다. 교육부는 시안 발표 때부터 “절대평가 방향성에는 공감했으나 대입 안정성 차원에서 신중한 입장이 다수”라고 전했다. 의견수렴을 위한 권역별 공청회 패널 구성도 1안 찬성 비중이 높았다. “특정 안을 염두에 두고 있지 않다”는 교육부 공식 입장이 곧이곧대로 들리지 않는 이유다. 여론도 대체로 1안에 우호적인 편이다.
1안 지지에는 크게 두 가지 입장이 섞여 있다. 우선 변화 최소화다. 2안으로 갔을 때 수능이 변별력을 잃어 대입 요소 기능을 상실할 것을 경계하는 입장이다. 객관적 정량평가인 수능이 공정하다는 전제가 깔려있다. 이종배 공정사회를 위한 국민모임 대표는 “두 가지 수능 절대평가안을 모두 철회하고 상대평가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절대평가 전환에 따른 수능 위주 정시전형 약화는 수시전형, 특히 공정성·객관성 면에서 불신이 높은 학생부종합전형(학종) 확대로 이어질 것이란 우려가 많았다. 4차례 공청회에서 반복해 나온 의견이다. 김선희 좋은학교바른교육학부모회 회장은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학종에 대한 불신이 크다”며 전면 절대평가를 반대했다. 문재인 정부 교육정책 설계에 관여한 이범 교육평론가 역시 “수능 개편보다 학종 개편이 먼저”라고 강조했다.
2안이 시행되면 학교 현장 혼란이 불가피한 점도 1안 ‘조건부 지지’의 배경이다. 고교학점제, 내신 성취평가제(절대평가), 자율형사립고·특수목적고 폐지는 수능 개편과 맞물려 ‘뫼비우스의 띠’처럼 이어져 있다. 학생들이 수업을 선택해 듣는 고교학점제는 내신 절대평가가 선행조건이다. 내신 상대평가 체제에선 학생들이 점수 얻기 어려운 과목을 기피하는 탓이다. 반면 내신 절대평가를 시행하면 자사고·특목고 선호가 더 심해질 것이다. 우수학생끼리 경쟁하는 내신 부담을 덜어 자사고·특목고가 대입에 유리하다는 판단 때문에 그렇다.
이들 정책은 아직 확정된 게 없다. 김종우 양재고 진로진학부장은 ‘큰 그림’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수능만 바꿔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라고 했다. 연동된 정책에 대한 고려 없이 수능만 ‘나 홀로 개편’ 하는 데 따른 부작용인 셈이다.
◆ 힘 실리는 '유예론'… "결정 늦추고 보완하자"
두 안 모두 거센 반발이 일자 수능 개편안 발표를 유예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여당 내부에서 이런 기류가 감지됐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여당 간사인 유은혜 의원은 앞서 “교육부가 31일 일방적으로 (개편안을) 발표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 문제를 논의할 것으로 알려진 25일 더불어민주당 의원 워크숍에 눈길이 쏠린다.
수능 개편을 1년 뒤로 미루면 고교학점제 도입과 발맞춰 추진할 여지가 생긴다. 국정과제에는 2018년부터 학생부 위주 전형과 고교학점제에 맞는 대입제도 개선을 추진한다고 명시됐다. 하지만 교육부는 예고한 일정대로 수능 개편안을 확정 발표할 방침이다. 이주희 대입제도과장은 “2021학년도 수능을 치를 현 중3 학생들의 고입이 이미 시작돼 발표를 미루기 어렵다”고 부연했다.
전국 진로·진학교사 5600여 명이 소속된 전진협·진진협은 교육부 시안 폐기와 확정안 발표 연기를 촉구했다. 수능 개편안 대수술이 필요하다는 이유다. 수학 가·나형 구분을 없애는 등 고1 때 배우는 공통과목 위주 전 과목 절대평가를 ‘제3의 대안’으로 제시했다.
사실 이 방안은 교육부가 검토했다가 시안 발표에서 제외한 안과 흡사하다. 이만기 유웨이중앙교육 교육평가연구소장은 “개정 교육과정 취지에는 부합하지만 고1 범위에서만 수능을 출제하면 2~3학년 수업이 파행을 빚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때문에 진로·진학교사 단체는 “수능을 고2 4월로 앞당기는 것도 고려하자”고 제안했으나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평이다.
수능 손질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고교 교육과정과 대입 시스템을 함께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이금수 EBS 진로진학 담당 전속교사는 “문·이과로 갈라놓는 수학 가·나형을 폐지하려면 대학도 나서야 한다. 대학 1학년 때 수학 기초과정을 개설해 입학 후 전공 필요에 따라 수준별로 이수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조언했다.
김봉구 한경닷컴 기자 kbk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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