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 매출 300조 삼성, 불확실성 커져
변화대응·신성장 동력 확보에 큰 차질
삼성 공격했던 엘리엇, ISD 나설 가능성
애플·구글 등 경쟁사들 반사이익 '희색'
[ 좌동욱 기자 ]
25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법원이 5년의 징역형을 선고하자 삼성 주요 경영진은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이 됐다”며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사옥에선 선고 공판이 끝난 뒤에도 충격이 가시지 않은 듯 직원들이 일손을 놓고 삼삼오오 모여 대화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삼성 측은 재판부가 이번 사건의 본질을 “헌법상 최고 정치권력자인 박근혜 전 대통령과 국내 1위 대기업인 삼성그룹 경영진 간 정경유착”이라고 단정한 것에 망연자실하는 분위기다. 부정한 청탁이나 대가 관계를 입증할 구체적인 증거가 없다고 인정하면서도 특검 측 주장을 사실상 100%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글로벌 경쟁사들 ‘희색’
이번 판결로 연매출 300조원, 임직원 30만 명이 넘는 삼성그룹의 경영진 공백 사태가 장기화할 전망이다. 급변하는 비즈니스 환경에 대한 대응 능력 약화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이경묵 서울대 경영대 교수는 “5~10년 후 무엇을 할지 고민할 주체가 사라진 게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경영진 내부의 경쟁이 느슨해지고 의사소통도 줄어들면서 내부 통제 기능이 약해지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삼성 계열사의 한 사장은 “최근 전자 계열사와 금융 계열사는 같은 그룹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상호 교류가 완전히 사라져버렸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번 판결의 또 다른 부담은 이 부회장을 포함한 삼성그룹 전·현직 경영진의 뇌물죄 선고로 인한 대외 신인도와 브랜드 가치 추락이다. 재판부는 이날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성사는 이 부회장의 포괄적인 경영권 승계를 위한 목적으로 추진됐다”는 특검 측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또 삼성 경영진이 “최순실의 딸 정유라의 승마 훈련을 지원하기 위해 삼성전자 재산을 해외로 도피하고 이를 은폐하기 위해 허위 계약서를 만들었다”는 결론을 냈다. 이 부회장과 최지성 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장(부회장) 등이 범죄 행위를 벌인 뒤 이를 조직적으로 은폐했다는 의미다.
이 부회장은 2심과 대법원의 확정 판결이 변하지 않을 경우 “경영권을 승계하기 위해 정치권에 뇌물을 제공했다”는 낙인을 받게 됐다. “아무리 부족하고 못난 놈이어도 서민의 노후자금인 국민연금에 손을 대고 욕심을 냈겠는가”라는 이 부회장의 호소는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날 판결을 지켜본 삼성 관계자들도 이 대목을 가장 안타까워했다.
삼성과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는 애플, 구글, 소니, 화웨이와 같은 글로벌 경쟁사들은 삼성의 이런 상황을 교묘하게 활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윤종용 전 삼성전자 부회장은 “글로벌 기업들의 거래 관계는 신뢰와 믿음을 바탕으로 해서 이뤄진다”며 “경영진의 불법 행위는 미래 거래뿐만 아니라 기존 거래 관계에까지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어 “나중에 2심 또는 대법원이 무죄를 선고했을 때 이미 삼성전자가 받은 손실을 어떻게 보상할 수 있겠느냐”고 덧붙였다.
◆예상치 못한 타격 이어질 듯
자본시장에서 국내외 주주의 동요와 이탈도 예상된다. 신진영 연세대 교수는 “노르웨이 국부펀드, 네덜란드 APG와 같은 연기금은 내부 윤리 기준에 따라 불법 행위에 가담한 기업에 대한 투자를 금지한다”며 “삼성이 이런 기준에 걸릴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삼성 고위 관계자는 “당장 한국의 1심 판결이 확정 판결이 아니라는 사실을 주주들에게 납득시키는 게 쉽지 않다”고 털어놨다.
일부 주주가 삼성을 상대로 소송에 나설 가능성도 제기된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당시 삼성을 공격했던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가 1심 결과를 앞세워 투자자·국가 간 소송(ISD)에 나설 수도 있다. 유죄 판결이 확정되면 미국 정부가 해외부패방지법(FCPA)을 근거로 삼성에 거액의 벌금을 부과할 개연성도 있다. 이 법은 외국 기업이 해외에서 뇌물죄나 회계 부정 등으로 처벌받으면 벌금, 공공 입찰 금지, 중과세 등으로 처벌하는 제도다.
좌동욱 기자 leftki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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