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등 공공기관의 공문서가 한글맞춤법을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황주홍 국민의당 의원이 31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현재 공문서에서 도량형 단위를 쓸 때 한글 맞춤법의 만, 억, 조 단위를 사용하지 않고, 외래식 도량형 단위인 천, 백만, 십억 단위를 사용하고 있다.
현행 한글 맞춤법 제44항은 "수를 적을 적에는 ‘만(萬)’ 단위로 띄어 쓴다. 십이억 삼천사백오십육만 칠천팔백구십팔 12억 3456만 7898"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해설에서도 "십진법(十進法)에 따라 띄어 쓰던 것을 '만'단위로 개정하였다. 따라서 '만, 억, 조' 및 '경(京), 해(垓), 자(?)' 단위로 띄어 쓰는 것이다"라고 되어 있다.
현재 모든 신문, 방송 역시 이 한글 맞춤법 조항을 따르고 있지만 정부가 제출한 공문서들은 사정이 다르다.
예를 들어 '단위: 백만원' 등으로 되어 있어, 3천만 원을 '30백만 원'이라고 표시하고, 읽어야 하는 불편과 오독을 감수해야 하는 실정이다.
'2011년 지상권 임대료 수입현황' 사례를 보면 수치는 278이고 단위는 백만원이다. 이 숫자를 보고 2억7800만 원으로 해석해야 하는 것이다.
황주홍 의원은 국회 예결특위 결산심사 소위에서 단위(도량형)의 ‘국적 회복’ 문제의 심각성을 지적했다.
황 의원은 "정부가 공문서에 한글 맞춤법의 도량형 단위(만, 억, 조)가 아닌 외래식 도량형 단위(천, 백만, 십억)의 단위를 사용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황 의원은 "정부의 어이없는 국적 불명의 단위 사용에 대해 19대 국회부터 줄기차게 시정요구를 해왔다"면서 "지금은 상당 부분 해소·해결되고 있지만 완전히 해결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황 의원은 이어 "정부의 외래식 도량형 단위 사용은 국민들 및 이용 민원인들의 불편과 번거로움을 야기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국민들의 알권리와 정보 접근·파악에도 심각한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정부측은 "우리나라 방식대로 도량단위를 국제기구 등에 제출하게 되면 국제 관행에 어긋날 수 있다"며 우려를 표명했다.
이에 황 의원은 "그렇다면 미국이나 영국이 kg대신 파운드 단위를 쓰고 있으니, 무게를 표시하는 국내 공문서 등도 파운드로 표시해야 하는 것이냐"고 추궁했다.
그러면서 "한글로 적힌 국내 경제 성장률 따위의 공문서를 국제기구에 제출할 때 당연히 영어로 번역해서 보내야 하듯, 만 단위로 되어 있는 것을 영어식인 백만 단위로 ‘번역’해서 보내주면 되는 것 아니냐"고 되물었다.
국회 결산심사 소위원회는 이 문제에 대해 추후 재논의하기로 했다.
이미나 한경닷컴 기자 helper@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