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9월17일은 광복군 창설 77주년이 되는 날이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첫 정규군으로, 1940년 9월17일에 창설된 한국광복군. 그중에서도 ‘대한민국의 영원한 광복군’으로 불리는 청년 김준엽의 이야기가 있다.
광복군이 창설되면서 중국 곳곳에 흩어져 있던 대한민국 청년들이 광복군에 입대하기 위해 모이기 시작했다. 그 가운데 무려 6000리, 10개월의 대장정을 거쳐 광복군에 입대한 청년 김준엽도 있었다.
김준엽은 1920년 평안북도 강계에서 태어나 일본 게이오대 유학 도중 1943년 일제가 학도병을 강제 징집하면서 끌려갔다. 만 23세의 김준엽은 1944년 3월29일 새벽 2시 경비병 교대가 이뤄지는 단 3분을 틈타 탈출했다. 최초로 발생한 ‘학도병 탈출’이었다.
김준엽 선생은 훗날 “나는 중국 전선으로만 간다면 일군(日軍)을 탈출하고 내가 동경하던 우리의 독립군, 우리의 임시정부에 찾아갈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가 될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고 그때를 회고했다.
임시정부로 향하는 청년 김준엽 앞에는 수많은 난관이 펼쳐졌다. 그중에서도 해발 3000m의 파촉령은 일본군조차 진격을 포기할 만큼 험준한 곳이었다. 혹한의 파촉령을 넘으며 온몸이 얼어들어가는 고통 속에서도 김준엽은 “우리 조상들은 망국의 유산을 남겨주어 우리로 하여금 이 고생을 겪게 했지만 우리는 후손에게 절대로 이런 고생을 맛보게 해서는 안 된다고 입술을 깨물고 몇 번이고 다짐했다”고 한다.
지금 대한민국에도 수많은 ‘청년 김준엽’이 있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전후방에서 국방의 의무를 다하고 있는 청년뿐만 아니라 북한의 도발에 집에 있던 군복을 꺼내 입고 나라를 지키겠다고 행동하는 청년들이 바로 그들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사실상 병역의무가 없는 해외 영주권자임에도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병역의무를 이행하고자 입영을 신청하는 청년이 2004년 24명에서 2016년 646명으로 증가했다. 몸이 아프거나 과체중 등으로 군 복무를 할 수 없었지만 치료와 운동을 통해 다시 현역 판정을 받아 입영을 신청한 청년도 한 해 300여 명에 이른다.
광복군 창설 77년이 지난 지금, 한반도를 둘러싼 급변하는 국제정세로 안보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가운데 더 나은 나라를 만들고자 기꺼이 자신을 희생하는 우리의 자랑스러운 청년 김준엽들이 있어 항상 든든하다. 필자가 몸담고 있는 병무청도 공정병역을 기반으로 병역이 자랑스러운 사회 분위기 조성에 온힘을 쏟고 있다. 청년 김준엽들이 자부심과 긍지를 가질 수 있도록 국민 모두의 관심과 응원을 기대해본다.
기찬수 < 병무청장 kchs5410@korea.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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