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상엽 기자 ] 공정거래위원회의 ‘총수일가 일감 몰아주기’ 제재가 법원에서 제동이 걸렸다. 공정위가 공정거래법상 총수 일가의 사익 편취 규정을 근거로 과징금을 물린 처음이자 유일한 사례인 대한항공 과징금 처분에 대해 법원이 ‘부당하다’고 판결했다.
서울고등법원 행정2부(부장판사 김용석)는 1일 대한항공이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등 총수 일가가 운영하는 자회사에 일감을 몰아줘 공정위로부터 받은 시정명령과 14억3000만원의 과징금을 취소해달라며 낸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공정위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대한항공, 싸이버스카이, 유니컨버스 등 3개 회사의 내부거래 계약으로 귀속된 이익이 공정거래법이 정한 ‘특수관계인에 대한 부당한 이익’에 해당한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결 이유를 밝혔다.
재판부는 “부당이익은 공정거래 저해성이 아니라 경제력 집중 등의 맥락에서 조화롭게 해석해야 하고 부당성의 증명 책임은 공정위에 있다”고 전제한 뒤 “공정위가 대한항공과 그 계열사들의 행위를 ‘부당거래’라고 주장하려면 비교 대상이 되는 ‘정상거래’에 대한 기준을 제시해야 하는데 이를 명확히 밝히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비교 대상 없이 어떻게 부당거래라고 단정할 수 있느냐는 취지다.
재판부는 또 “싸이버스카이의 2015년 총매출 70억원가량 중 대한항공과의 거래를 통해 얻은 수입은 0.5%로 그 규모가 미미하다”며 “이 정도 규모의 거래를 통해 원고들이 사익을 편취하고 경제력의 집중을 도모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결론 내렸다.
공정위는 작년 11월 “대한항공이 조 회장의 자녀 조현아·원태·현민씨가 주식 대부분을 소유한 싸이버스카이 및 유니컨버스와 한 거래가 공정거래법의 사익 편취 금지 규정을 위반했다”며 시정명령과 과징금을 부과했다. 싸이버스카이는 기내 면세품 판매 관련 사업을 하는 대한항공 계열사로, 조현아 씨 등이 100% 지분을 보유한 회사다. 유니컨버스는 콜센터 운영, 네트워크 설비 구축 등의 업무를 담당하는 회사로, 2007년부터 올 1월까지 조 회장과 자녀들이 70~100% 지분을 보유했다.
공정위는 대한항공이 직원들을 동원해 기내면세품 인터넷 광고 업무를 대부분 하게 하고, 광고 수익은 싸이버스카이에 몰아줬다고 지적했다. 싸이버스카이가 인터넷 등에서 판매한 상품의 수수료도 받지 않았다고 봤다. 이는 공정위가 특수관계인에 대한 부당한 이익 제공을 금지하는 공정거래법 제23조의 2 조항에 근거해 과징금을 부과한 처음이자 유일한 사례다. 해당법은 공정거래법 제23조의 2로 공시 대상 기업집단에 속하는 회사는 친족 등 특수관계인이나 특수관계인이 일정 비율 이상 주식을 보유한 계열 회사와 유리한 조건의 계약, 거래 등으로 부당한 이익을 주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대형로펌의 공정거래 전문변호사는 “공정거래법 제23조의 2에 관한 최초의 사례이고 그 구성요건을 둘러싼 법리해석이 치열했던 사건”이라며 “상고가 이뤄진다면 대법원의 최종 결론에 따라 향후 공정위의 실무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상엽 기자 ls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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