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총수 생긴 네이버…벤처업계 "30년 묵은 잣대가 성장 발목"

입력 2017-09-03 12:20  

네이버 '총수 없는 대기업' 지정 불발
공정위 "이해진 회사 지배력 있다"
IT업계 "총수 지정 규제 재논의 필요"




이해진 전 네이버 이사회 의장(사진)이 대기업 '총수'로 이름을 올리게 됐다. "나는 총수가 아니다"는 그의 주장은 결국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 전 의장이 총수로 지정되자 정보기술(IT) 업계에서는 규제 당국이 과거 잣대로 현재를 재단해 산업 경쟁력을 위축시킨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3일 공정거래위원회는 네이버를 자산 5조원 이상의 공시대상기업집단(준대기업집단)으로 지정하고, 이 전 의장을 기업을 지배하는 동일인(총수)으로 지목했다. 동일인은 회사 경영에 대한 법적 책임을 지는 동시에 특수관계인에 대한 부당한 이익 제공이 금지된다. 본인은 물론 6촌 이내 가족들이 보유한 지분 보유 현황과 개인 회사에 관한 내용도 공시해야 한다.

◆공정위 "이해진 지분, 지배력 행사에 유의미"

그동안 이 전 의장은 총수 자리를 피하기 위해 부단히 애써왔다. 그는 지난달 중순 공정거래위원회를 찾아가 "네이버는 다른 재벌과는 지배 구조가 다르다"며 총수 없는 대기업 지정을 요청했다.

이어 지난달 22일에는 보유 중이던 네이버 주식 11만주(지분율 0.33%)를 매각했다. 주식 처분 배경을 두고 다양한 얘기가 나왔지만, 업계는 이 전 의장이 회사 지배 의사가 없다는 의사 표시를 한 것으로 해석했다.

이 전 의장이 '네이버의 다름'을 주장한 배경은 지배구조와 경영방식이 기존 대기업과 다르다는 것이었다. 네이버의 최대주주는 국민연금으로, 이 전 의장의 지분은 4%대에 불과하다. 계열사 순환출자 구조나 일가 친척의 경영 참여도 없다. 등기임원으로서 회사 경영에 대한 법적 책임도 이미 부담하고 있다.

그러나 공정위는 이 전 의장이 지분 지배력은 작지만, 경영에 관해서는 실질적으로 상당한 영향력을 미친다고 최종 판단했다. 공정위는 "경영참여 목적이 없다고 공시한 국민연금과 해외기관투자자를 제외할 경우, 이 전 의장이 최다출자자에 해당한다"며 "1% 미만 소수주주 지분이 약 50%에 달하는 등 높은 지분 분산도를 고려하면 사실상 이 전 의장의 보유 지분은 지배력 행사에 있어 유의미하다"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공정위는 지난 6월 성사된 네이버와 미래에셋대우의 자사주 교환도 이 전 의장의 우호지분 확보 차원으로 해석했다. 또 네이버 이사회가 김수욱, 이종우, 정의종, 홍준표 사외이사를 선임하는 과정에서도 이 전 의장이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판단했다.

◆IT 업계 "30년된 '총수 지정', 규제 목적과 어긋나"

이 전 의장의 총수 지정 여부는 IT 업계의 큰 관심사였다. 벤처 태생이 많은 IT 업계에서 네이버의 이번 사안은 향후 동일인 지정의 중요한 선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공정위의 결정에 대해 업계에서는 새로운 산업 생태계에 맞춰 총수 지정 기준을 다시 논의해야한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30년 전 만들어진 총수 지정의 취지는 제조업 위주 재벌의 내부거래와 오너 일가의 사익편취를 감시하자는 것이었다. 이를 벤처에서 시작해 대기업으로 성장한 회사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규제 목적에 어긋난다는 설명이다.

최경진 가천대 법학과 교수는 "총수 지정 규제는 한국식 재벌을 감시하기 위한 수단으로 만들어진 것"이라며 "네이버 지분이 4%에 불과한 이 전 의장이 과거 재벌과 같은 악습을 행할 수 있는지 생각해봐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업계에서 가장 많이 우려하는 대목은 해외 사업과 투자 유치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IT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과 직결되는 인수·합병(M&A)이 각종 국내 규제와 '재벌 총수'라는 부정적 이미지에 갇혀 위축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 전 의장은 지난해부터 네이버 해외투자책임자(GIO)라는 직함을 달고 해외사업을 주도하고 있다. 지난 6월 네이버가 글로벌 경쟁자들을 제치고 제록스리서치센터유럽(XRCE)을 인수할 수 있었던 것도 투명한 지분 구조와 경영 철학이 높은 평가를 받았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졌다.

포털 다음 창업자 이재웅 씨는 페이스북을 통해 "네이버는 이 전 의장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이상적인 지배구조"라며 이 전 의장과 네이버 측의 주장을 지지하기도 했다. 그는 "정부는 이런 지배구조를 스스로 만든 기업을 대기업 지정이나 총수 지정을 하지 않음으로써 다른 기업이 지배구조 개선을 할 요인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박희진 한경닷컴 기자 hotimpac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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