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귀족 영지 관리인이던 찰스 보이콧은 소작인들을 난폭하게 대하는 것으로 악명이 높았다. 그는 1880년 소작료를 체납한 소작인들을 쫓아내려다 단합한 소작인들의 배척을 받고 추방당했다. 어떤 행위에 대항하기 위해 조직적·집단적으로 거부하는 것을 뜻하는 ‘보이콧’이란 말은 이렇게 해서 생겨났다.
국제정치적으로 ‘세컨더리 보이콧(2차 제재)’은 제재 대상 국가와 거래하는 제3국 정부와 기업, 은행 등에도 제재를 가하는 것을 뜻한다. 아랍 국가들의 ‘대(對)이스라엘 보이콧’이 잘 알려진 사례다. 아랍은 2차 중동전쟁 직후인 1973년 12월 적국인 이스라엘과 교역하는 다른 나라 기업의 아랍 진출을 봉쇄하는 ‘알제리 선언’을 발표했다. 중동분쟁에 대한 각국의 태도에 따라 석유 공급여부를 결정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국내 에너지의 상당부분을 중동 석유에 의존하고 있었고, 중동 건설시장 진출 붐을 이뤘던 한국은 아랍의 요구에 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에 반발한 이스라엘은 1978년 국내에 상주하던 대사관을 폐쇄했다. 1994년 이츠하크 라빈 이스라엘 총리의 공식 방한을 계기로 한·이스라엘 관계는 복원됐다.
북한을 겨냥한 ‘세컨더리 보이콧’이 위력을 발휘한 것은 미국이 2005년 9월 마카오에 있는 중국계 방코델타아시아은행(BDA)을 제재했을 때다. 미국 재무부는 북한의 불법 자금세탁 창구로 이용되고 있다며 이 은행을 돈세탁 우려대상으로 지정했고, 미국과의 거래를 중단시켰다. BDA는 대량인출 사태가 벌어지자 수십 개 계좌에 들어 있던 북한 자금 2500만달러를 동결시켰다. 이 돈은 김정일 통치자금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BDA 제재 조치 이후 미국과 거래가 끊길 것을 우려한 중국 24개 은행이 북한과 거래를 중단했다. 북한 외교관은 “피가 마르는 고통을 겪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북한은 2007년 2월 단계적 비핵화를 약속하는 조건으로 미국으로부터 BDA 제재 해제를 얻어냈다. 미국은 핵 문제에 대한 이란 제재에서도 ‘세컨더리 보이콧’을 활용해 효과를 봤다는 평가를 받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어제 “미국은 북한과 거래하는 어떤 나라와도 모든 무역을 중단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북한이 6차 핵실험을 한 데 대한 제재의 일환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세컨더리 보이콧’을 예고한 것은 처음이다. 북한 교역의 95%를 차지하고 있는 중국을 정조준한 것이다. 중국을 압박, 대북 원유공급을 중단토록 해 북한을 대화의 테이블로 나오게 하는 것이 트럼프 대통령의 전략이라는 외신들의 분석이 나온다. BDA 제재 때처럼 효과를 거둘 수 있을까. 공은 중국에 넘어갔다.
홍영식 논설위원 ysho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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