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을 일컫는 순우리말은 ‘싹쓸바람’이다. 싹쓸어간다는 어감이 실감난다. 태풍을 영어로 타이푼(typhoon)으로 부르지만, 어원은 태풍이 아니다. 그리스신화에서 폭풍우를 일으키는 괴물 ‘티폰(Thypon)’에서 왔다고 한다. 옛 중국에선 ‘구풍(風)’으로 불렀고, 태풍(颱風)이란 말은 17세기에야 문헌에 등장한다. 그러나 티폰이 중국에서 유래했을 수도 있다.
같은 태풍이라도 카리브해에선 허리케인(hurricane), 인도양에선 사이클론(cyclone)으로 불린다. 사이클론은 구름이 돌아가는(cycle) 모습에서 유래했다. 허리케인은 강풍, 폭풍을 뜻하는 스페인어 ‘우라칸(huracan)’에서 왔다. 우라칸은 카리브해 부근의 민족들이 ‘폭풍의 신’을 일컫던 말이다.
어쨌든 통칭 태풍은 초속 33m 이상의 강한 폭풍우를 동반한 열대성 저기압이다. 바다 표면온도가 26도 이상으로 오르면 쉽게 증발해 엄청난 수증기를 머금은 태풍으로 발달하는 것이다. 태풍의 규모는 과거엔 중심기압의 높고 낮음으로 분류했지만, 기상관측장비 발달로 지금은 10분간의 최대풍속이 국제기준이다.
매년 10회 안팎 북미대륙에 영향을 미치는 허리케인은 5단계로 분류한다. 미국은 기상 선진국답게 10분이 아니라 1분간 최대풍속으로 분류한다. ‘샤피어-심슨 등급’으로 △1등급 시속 95마일(152㎞) 이하 △2등급 110마일(177㎞) 이하 △3등급 130마일(209㎞) 이하 △4등급 155마일(249㎞) 이하 △5등급 156마일(250㎞) 이상이다. 3등급이면 빌딩에 금이 가고, 4등급은 주택이 파괴되며, 5등급은 나무를 모두 쓰러뜨리고 빌딩을 파괴할 정도다.
역대 최강의 허리케인은 2015년 미국과 멕시코를 강타한 ‘퍼트리샤’다. 분당 최대풍속이 345㎞에 달해 ‘퍼펙트 스톰’으로 불렸다. 피해만 놓고 보면 2005년 ‘카트리나’다. 902hPa(헥토파스칼), 풍속 280㎞였지만 1200여 명의 사망자를 냈다.
태풍 중에는 2013년 ‘하이옌’이 최대풍속 315㎞로 가장 셌다. 중심기압 기준으론 1979년 태풍 ‘팁’이 870hPa로 퍼트리샤(872hPa)나 하이옌(895hPa)보다 강력했다. 사이클론은 비교적 덜 센 편이다. 한국에 닥친 태풍 중엔 2002년 사망 246명과 5조원대 손실을 낸 ‘루사’의 피해가 가장 컸지만 세계 태풍 순위에선 100위 밖이다.
4등급 ‘하비’가 텍사스를 강타한 지 1주일 만에 초강력 허리케인 ‘어마(Irma)’가 북상해 미국 동남부가 초비상이다. ‘어마’는 최대풍속 약 300㎞급으로 커져 주말께 플로리다에 상륙할 전망이라고 한다. 이름 그대로 어마어마하다.
노자는 《도덕경》에서 ‘천지불인(天地不仁)’이라고 했다. 광포한 자연 앞에서 인간은 한낱 짚강아지와 다를 게 없다는 노자의 비유가 실감난다.
오형규 논설위원 oh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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