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성과 한음’으로 잘 알려진 백사 이항복 선생부터 8대에 걸쳐 여섯 명의 정승을 배출한 우당 이회영 가문은 조선시대 최고 명문가이자 대표적인 독립운동가 가문이다. 모든 기득권을 포기하고 독립운동을 위해 만주로 향한 60여 명의 우당 가문 사람들은 대부분 조국의 독립을 보지 못하고 타국에서 순국했으니 “우리 민족은 우당 가문에 큰 빚을 졌다”는 월남 이상재 선생의 말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우리 주변에는 나라를 위해 헌신하고 희생한 수많은 스토리가 있다. 일제강점기인 1942년 강제징용자로 일본으로 끌려가 2년6개월 동안 강제노동을 하다 돌아온 한 남성의 이야기도 그중 하나다. 그는 조국이 광복되자 평온한 삶을 꿈꾸며 고향으로 돌아왔다. 평온도 잠깐, 6·25전쟁이 일어나자 사랑하는 부인, 어린 자식들과의 행복을 뒤로하고 전장에 뛰어들어 무수히 많은 죽을 고비를 넘겨야 했다. 전쟁 후반에는 지리산 공비토벌대로 작전에 참가하던 중 매복한 인민군의 기습공격을 받아 모든 소대원이 전사하고 자신을 포함한 두 명만이 살아남는 비운을 경험했다.
이 영화 같은 이야기의 주인공은 고(故) 이억조 씨다. 지난 6일 열린 병역명문가 시상식에서 영예의 대상인 대통령상을 받은 이기옥 가문은 이억조 씨부터 3대에 걸쳐 15명이 모두 현역으로 군 복무를 마쳤다. 이들의 복무기간은 무려 991개월, 햇수로는 83여 년이다.
한국국방연구원의 ‘장병 의식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국방의무가 ‘국민의 당연한 의무’라고 응답한 장병 비율은 2016년 48.7%로 2년 만에 10%포인트 이상 떨어졌다. 이를 두고 군 장병들의 안보관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는 것은 당연하지만, 달리 생각하면 전쟁을 직접 겪지 못한 젊은 세대에게는 분단된 한반도의 현실이 자기 일로 여겨지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국가라는 존재는 공기와 같아서 평소에는 그 소중함을 느끼기 어렵기도 하다.
그러나 ‘나라가 있어야 가문도, 명예도 있다’는 가르침을 몸소 실천한 우당 이회영 가문처럼 병역명문가의 대를 이은 나라 사랑과 숭고한 희생정신이 있었기에 지금의 우리가 있는 것은 아닐까.
북한의 6차 핵실험 도발 등으로 한반도 안보 상황이 그 어느 때보다 위중해지면서 병역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병역명문가의 국가를 위한 희생과 헌신도 더 빛을 발하는 것 같다. “진정한 애국심은 그 말보다 실천에 있음을 알아야 한다”는 도산 안창호 선생의 말처럼 병역의 가치를 몸소 실현하고 있는 우리 시대의 진정한 애국자들에게 존경과 감사의 박수를 보낸다.
기찬수 < 병무청장 kchs5410@korea.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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