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익 못내도 매출 일정액에 세금…통상적 과세 원칙 수정 나서
EU 회원국 만장일치가 관건
본사 유치 등 기업 혜택 입은 룩셈부르크·아일랜드 동의 불투명
[ 이상은 기자 ]
프랑스와 독일 등이 유럽연합(EU) 차원에서 기업 이익이 아니라 매출에 세금을 부과해 조세회피를 어렵게 하는 ‘균등세(equalisation tax)’ 도입을 추진한다. 미국 실리콘밸리의 거대 정보기술(IT) 기업들이 이익이 발생한 것에 세금을 부과하는 규정을 교묘히 활용해 정당한 세금을 내지 않는다는 비판이 커지고 있어서다.
9일(현지시간)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 보도에 따르면 브뤼노 르메르 프랑스 재무장관은 오는 15~16일 에스토니아 수도 탈린에서 열리는 EU 재무장관 회의에서 독일·스페인·이탈리아 재무장관과 공동으로 균등세를 제안할 예정이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선거 기간 공약한 내용이다.
◆매출의 2~5% 세금으로
FT가 확보한 초안에 따르면 균등세는 글로벌 기업이 진출한 나라에서 이익을 내지 않았더라도 그 나라에서 발생한 매출이 있다면 매출의 일정액을 세금으로 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프랑스 정부의 한 관료는 FT에 “낮은 세율을 적용하더라도 매출에 직접 과세한다면 과세 범위가 넓어지기 때문에 유럽 각국 정부가 지금까지 거둔 것보다 훨씬 많은 세금을 거둘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매출 대비 2~5% 선에서 균등세율이 적용될 것으로 예상했다.
이런 조치는 ‘이익이 난 곳에 세금을 부과한다’는 통상적인 법인세 과세 원칙에 어긋나는 것이다. 사업을 벌인다고 해서 모두 이익이 나는 것은 아니다. 번 돈보다 쓴 돈이 더 많다면 이익이 나지 않거나 적자를 볼 수 있어서다.
◆절세 쇼핑 원천차단 목적
최근 글로벌 IT 기업을 중심으로 ‘절세 쇼핑’을 통해 조세를 회피하는 사례가 늘면서 현 법인세 시스템이 무력해졌다는 지적이 쏟아졌다. 예컨대 프랑스에서 에어비앤비 이용자는 1000만 명이 넘지만 이 회사가 작년치 매출에 대해 프랑스에 낸 세금은 고작 9만3000유로(약 1억2670만원)다. 여러 나라의 계열사 간 로열티 지급 등 거래 관계를 활용해 최종 이익이 발생한 나라를 회사가 결정할 수 있는데, 프랑스는 법인세율이 33%대로 높기 때문이다.
EU 내에서 법인세율이 최저 수준(기본 12.5%)인 아일랜드에 주요 IT 기업 유럽 본사가 몰려 있는 이유다. 아일랜드는 고급 일자리를 유치하고 회계업 등 관련 부문이 호황을 누리고 있지만, 다른 나라들은 거둬야 할 세금을 제대로 걷지 못한다는 불만이 크다.
물론 기업 관점에선 ‘탈세’가 아니라 ‘절세’다.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등은 개별적으로 기업의 탈세를 문제삼고 있으나 소득은 크지 않다. 작년 2월 프랑스 정부가 구글에 16억유로 세금 부과를 추진했으나 정작 프랑스 법원이 아일랜드에 있는 구글 본사에서 이익이 발생한 것에 프랑스 정부가 세금을 매길 권리가 없다는 이유로 1심에서 구글 손을 들어주기도 했다. EU 집행위가 반독점 규정을 활용해 구글 등에 대규모 벌금을 매기는 것도 기본적으로 매출이 발생한 나라에서 세금을 매기지 못하는 데 대한 정치적인 강제 보정 성격이 짙다.
◆아일랜드 등 반발 변수
개별 국가 차원에서 해결할 방법이 없다 보니 글로벌 차원에서 해결하자는 얘기가 자꾸 나온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주요 20개국(G20)이 함께 도입한 ‘국가 간 소득 이전을 통한 세원 잠식(BEPS)’ 대응 프로젝트가 대표적이다. 지난해부터 시행돼 글로벌 기업의 소득 관련 정보를 공유하기 시작했다. 지나치게 낮거나 높은 이전가격 등을 문제삼아 과세 근거를 마련하려는 조치다. 하지만 ‘이익 기반 법인세’ 시스템을 그대로 놔두고는 근본적인 해결이 쉽지 않다.
이는 EU 차원의 균등세 도입이 검토되는 이유지만 동시에 걸림돌이기도 하다. EU 법률을 바꾸기 위해선 회원국이 만장일치를 이뤄야 한다. 지금껏 글로벌 기업에 혜택을 줘 기업 본사를 유치해온 아일랜드와 룩셈부르크 등이 순순히 동의할지는 미지수다. 다수결과 달리 만장일치제에선 소수 국가의 견해를 배제할 수 없다.
4개국 장관들은 이달 회원국 지지를 확보해 연말까지 EU 집행위가 구체적인 초안 작성까지 마치도록 하겠다는 구상이다. EU 집행위 대변인은 “지금 중요한 것은 단일시장을 보호할 수 있는 공동의 접근법을 취해 전진하는 것”이라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반면 룩셈부르크 총리를 오랫동안 지낸 장클로드 융커 EU 집행위원장은 다소 곤혹스러운 처지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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