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현주 기자 ]
광주광역시 송정역 인근에는 송정매일시장이라는 오래된 장터가 있었다. 이곳의 시간은 과거에 멈춘 듯했다. 시끌벅적했던 시장의 온기는 사라지고 적막감이 감도는 나날이 지속되고 있었다. 55개 점포 가운데 18곳이 텅 빈 공간을 드러내던 게 지난해 초의 상황이었다.
2017년 현재 송정역 인근은 전혀 다른 곳 같다. 전통과 현대가 조화를 이룬 좋은 예로 꼽힌다. 40~50년 된 노포들과 반짝이는 아이디어로 시장에 뛰어든 청년 상인들이 한데 어우러지며 독특한 분위기를 형성한다.
사람들의 발길이 잇따르는 장터의 제 기능을 회복했을뿐더러 지역의 자랑이 됐다. 이름도 ‘1913 송정역시장’으로 바뀌었다.
눈에 띄는 변화는 수치로 확인된다. 지난해 4월 시장 재개장 이후 한 달도 되지 않아 하루평균 방문객 수가 하루 200명에서 평일 기준 2000명, 주말 기준 4000명으로 많게는 20배가량 폭발했다.
어찌된 일일까. 결론부터 얘기하면 전통시장 부활의 키워드는 바로 디자인, 그중에서도 타이포그래피다. 오래된 시장의 가치 재발견, 그리고 이 같은 정체성을 가장 정확하고 간결하게 표현하는 도구가 바로 타이포그래피, 즉 활자였다.
이 시장의 타이포그래피는 전통시장이 주는 흔한 이미지와는 조금 다른 느낌을 자아낸다. 이곳 간판의 역할은 오브제면서 조명이며, 콤팩트한 메시지다. 시장 초입임을 알리는 ‘1913 송정역시장’ 글자는 하나의 상징이 됐다. 밤이 되면 시장을 밝히는 조명 역할을 하기도 한다.
시장 안쪽으로 진입하면 특색 있는 가게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낸다. 개별 상점들의 달라진 풍경에서도 역시 간판이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가게마다 비슷한 듯 모두 다른 간판을 달고 있는데, 로고나 서체에서 상점의 특성을 반영하고 있다는 점이 독특하다.
거리 곳곳에는 ‘히스토리 월’ 등에 스토리가 담겨 있고, 바닥에는 동판에 숫자가 새겨져 있다.
송정역 시장의 변화는 전통시장 활성화 사업 일환으로 광주 창조경제혁신센터와 현대카드가 함께 창출한 결과물이다. 현대카드의 디자이너들이 참여해 프로젝트를 이끌었고, 시장을 하나의 상품으로 보고 지속 가능한 무기를 내놓고자 머리를 맞댄 끝에 나온 콘셉트가 바로 역사를 간직한 시장이었다.
프로젝트를 이끈 김영관 현대카드 창업지원센터장은 “어떤 느낌이나 분위기를 전달하고 싶은데 수단이 마땅하지 않을 때 타이포그래피는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말했다.
이현주 한경머니 기자 chari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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