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향기] 수천만 년 시간이 빚은 '후두'…이거 실화냐?

입력 2017-09-17 15:25   수정 2017-09-18 17:04

고아라 여행작가의 좌충우돌 미국 여행기
(7) 브라이스 캐니언 국립공원

수억 년 전 바다였던 이곳이 지금은 브라이스 캐니언이 되었으니, 또 다른 수억 년이 지난 후에는 어떤 모습으로 변할지 아무도 모를 일이다.

토르의 망치를 거쳐 투 브리지(Two Bridges)로 내려가는 구간과 나바호 트레일의 백미라고 알려진 월스트리트(Wall Street) 구간으로 향하는 길이다. 월스트리트 구간은 빌딩 숲에 싸여 해가 들지 않는 뉴욕의 월가와 그 모습이 비슷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미국 3대 캐니언으로 불리는 그랜드 캐니언(Grand Canyon), 자이언 캐니언(Zion Canyon), 브라이스 캐니언(Bryce Canyon)을 여행한다는 것은 지구의 나이테를 세는 일과 같다. 호수, 내해, 사막, 늪지, 삼림에 다양한 퇴적암층이 쌓아 올려 생성된 거대한 지층대, 그랜드 스테어 케이스(Grand Staircase)에 차례대로 있는 이들은 지구의 20억 년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지층대의 최상층부인 분홍색 절벽(pink cliff)에 자리한 브라이스 캐니언은 3대 캐니언 중 가장 최근에 형성된 막내 지층이다. 다른 캐니언에 비해 규모는 크지 않지만 그 어느 곳보다 섬세하고 우아한 풍경과 색채를 자랑한다. 억겁의 시간 동안 빗물이 조각해 만들어낸 천연 첨탑 ‘후두(Hoodoo)’가 보여주는 세상은 마치 숨겨져 있던 신의 도시를 찾은 듯 신비롭다.

첨탑의 도시가 눈을 뜨다

별이 미처 떠나지 못한 새벽, 일찌감치 숙소를 나와 브라이스 캐니언 국립공원으로 향한다. 신선하고 차가운 공기가 가득한 숲길을 지나 도착한 곳은 브라이스 포인트(Bryce Point) 전망대. 고심 끝에 결정한 브라이스 캐니언의 첫 만남 장소다. 주차장에서 전망대까지는 엎어지면 코 닿을 만큼 가까운 거리지만, 간밤에 길이 완전히 언 탓에 한 걸음 한 걸음이 아슬아슬하다. 눈이 소복하게 쌓인 난간 옆 안전하게 자리를 잡고 일출을 기다린다. 하늘이 점차 선홍빛으로 물들면서 어둠에 감춰져 있던 계곡이 장밋빛 속살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커다란 국자로 퍼낸 듯 둥그렇게 파인 거대한 공간에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돌기둥이 숨죽인 채 고개를 숙이고 있다. 태양이 하늘 위로 서서히 기어오르며 잠들어 있던 첨탑을 하나둘씩 일으켜 세우고, 브라이스 캐니언이 그 찬란한 눈을 뜬다. 오색 빛깔로 곱게 물든 돌기둥과 사이사이를 빼곡하게 메운 푸르고 깊은 숲, 그 위로 설탕처럼 곱게 흩뿌려진 하얀 눈이 만들어낸 풍광은 극적이다 못해 비현실적이다.

브라이스 캐니언은 1923년 일부 지역이 국가천연기념물로 지정됐다가 그로부터 5년 후인 1928년 국립공원으로 승격됐다. 브라이스 캐니언이란 명칭은 이 지역에 정착했던 모르몬교도 에비니저 브라이스(Ebenezer Bryce)의 이름에서 유래한 것이다. 사실 캐니언은 ‘협곡’을 뜻하는 단어지만 엄밀히 따지자면 브라이스 캐니언은 협곡이 아니다. 하천의 침식작용이 주원인인 여타 협곡과 달리 폰서간트 고원(Paunsaugunt Plateau)의 동쪽 부분이 침식돼 형성된 거대한 자연 원형 분지기 때문이다. 토사가 쌓여 굳은 해저 퇴적층이 융기하며 고원이 됐고, 단층에 생긴 균열 사이사이에 빗물이 흘러 들어갔다. 1년 중 200일이 영하를 밑도는 고원지대의 낮은 기온과 극심한 일교차에 물의 결빙과 해동이 반복되면서 바위기둥의 틈을 팽창시키고 부수기를 수천 만 년, ‘후두(Hoodoo)’라고 불리는 종루 모양의 천연 첨탑이 가득 생겨났다. 그러니까 브라이스 캐니언의 기묘한 풍광은 흐르는 물이 아니라 하늘에서 내리는 물에 의해 조각된 셈. 신이 흘린 눈물이 한 방울 두 방울 쌓아 올려지면 이런 모습일까. 인간은 감히 흉내낼 수조차 없는 섬세함과 고귀함이 느껴진다. 브라이스 캐니언의 진화는 현재진행형이다. 원형 분지의 가장자리가 50년마다 30㎜씩 계속해서 후퇴하고 있다. 인간의 시계로 보면 아주 느린 속도지만 60억 년이 넘는 지구의 역사로 따지면 엄청난 속도로 영역을 넓혀가는 중이다. 수억 년 전 바다였던 이곳이 지금은 브라이스 캐니언이 됐으니, 또 다른 수억 년이 지난 뒤에는 어떤 모습으로 변할지 아무도 모를 일이다. 자연의 무한한 시간 앞에 인간은 참으로 미미한 존재임을 다시금 깨닫는다.

각양각색의 풍경을 지닌 전망대


브라이스 캐니언은 남북으로 길게 뻗은 모양새다. 면적은 145㎢로 주변 국립공원과 비교하면 큰 규모는 아니다. 공원을 관통하는 중심도로를 따라 13개의 전망대가 마련돼 있는데, 이들을 하나하나 방문하는 것이 브라이스 캐니언을 여행하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이다. 최남단의 요빔파 포인트(Yovimpa Point)를 시작으로 공원에서 가장 높은 고도인 해발 2778m에 있는 레인보우 포인트(Rainbow Point), 타워 모양의 후두가 인상적인 아구아 캐니언(Agua Canyon)과 왕관을 연상케 하는 내추럴 브리지(Natural Bridge)를 거쳐 북상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수많은 명소 중에서도 단연 핵심은 공원 심장부를 차지하는 앰퍼시어터(Amphitheater) 구역이다. ‘고대 로마의 원형극장’을 뜻하는 명칭에서 알 수 있듯 이곳은 브라이스 캐니언이 보유한 지질학적 특성과 아름다움을 가장 잘 관찰할 수 있는 곳이다. 공원 최고의 풍경을 볼 수 있는 전망대는 물론 주요 트레킹 코스도 이곳에서 시작한다. 겨울을 제외한 계절에는 구역을 순환하는 무료 셔틀도 운행되니 굳이 운전하지 않더라도 여행이 가능하다. 탁 트인 공간에서 바라보는 일출이 일품인 선라이즈 포인트(Sunrise Point), 토르의 망치(Thor’s Hammer)를 비롯해 공원에서 가장 멋진 후두들을 보유한 선셋 포인트(Sunset Point), 호쾌한 풍경을 지닌 브라이스 포인트, 앞서 말한 세 포인트를 파노라마로 담을 수 있는 역동적인 인상의 인스퍼레이션 포인트(Inspiration Point)를 부지런히 다니며 브라이스 캐니언의 다양한 얼굴을 만나는 재미가 쏠쏠하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면 공원 입구에 있는 방문자센터의 도움을 받는 게 좋다. 브라이스 캐니언을 포함하고 있는 거대한 지층대의 지질학적 지식과 후두의 형성 과정은 물론 이 지역에 서식하는 각종 동식물에 대한 깊고 정확한 정보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레인저가 진행하는 다양한 투어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별을 관찰할 수 있는 천문학 프로그램부터 지질학을 주제로 한 지올로지 토크(Giology Talk), 브라이스 캐니언의 문화와 역사부터 생태계 정보까지 폭넓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림 워크(Rim Walk)투어 등이 있다.


12개의 트레킹 코스 ‘골라 걷는 맛’

높은 곳에서 브라이스 캐니언이 만든 신비롭고 장엄한 세상을 봤다면 이제는 그 속으로 들어가 섬세함을 엿볼 차례다. 공원에는 낮은 난이도의 모시 케이브(Mossy Cable)부터 다소 어려운 코스인 피카부 루프(Peekaboo Loop)를 포함해 총 12개의 트레킹 코스가 있다. 그중 최고로 꼽히는 것은 퀸즈 가든(Queens Garden) 트레일과 나바 호 루프(Navajo Loop)를 결합한 트레일이다. 왕복 4.6㎞의 길이에 3시간 정도가 소요되는 코스로 전체적인 난이도는 그리 높지 않지만 약 160m에 달하는 수직 스위치백(switchback) 구간이 있으므로 어느 정도의 체력이 요구된다. 트레킹을 즐기기에 가장 적절한 시기로는 보통 6~10월 사이를 꼽는다. 겨울에는 폭설로 걷기가 힘들뿐더러 트레일 곳곳이 폐쇄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브라이스 캐니언이 가장 아름다운 시기 또한 겨울이다.

후두 사이사이에 내려앉은 하얀 눈과 붉은 계곡의 대비, 자욱한 안개에 휩싸인 브라이스의 몽환적인 모습은 그야말로 신계에 가까운 절경이다. 퀸즈 가든-나바호 루프 트레일은 앰퍼시어터 구역의 선셋 포인트 혹은 선라이즈 포인트에서 시작하고 끝나는 순환로다. 어느 방향으로 돌아도 상관없지만 공원 측에서 추천한 선셋 포인트, 즉 나바호 트레일을 먼저 걸은 뒤 퀸즈 가든 트레일을 이어 걷기로 한다. 트레일 입구부터 시작되는 경사길을 따라 내려간 지 얼마 되지 않아 두 개의 갈림길이 나온다.


이 구역의 상징인 토르의 망치를 거쳐 투 브리지(Two Bridges)로 내려가는 구간과 나바호 트레일의 백미라고 알려진 월스트리트(Wall Street) 구간으로 향하는 길이다. 월스트리트 구간은 빌딩 숲에 싸여 해가 들지 않는 뉴욕의 월가와 그 모습이 비슷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인데, 양쪽으로 높이 솟은 살구빛 절벽 사이로 구불구불한 내리막길이 하염없이 이어진다. 이곳은 낙석이 많이 발생하는 구간이기도 해서 특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2006년 큰 규모의 낙석사고가 발생해 16개월 동안이나 트레일이 폐쇄되기도 했다. 겨울철 또한 안전의 이유로 통행이 금지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다이나믹한 ‘후두’ 탐험

투 브리지로 향하는 스위치백의 반환점을 하나하나 돌 때마다 높아지는 절벽의 크기와 후두의 위용에 입에서는 감탄사가 쉴 새 없이 흘러나온다. 코앞에서 바라보는 사암의 기묘한 형태와 놀라울 만큼 아름다운 색채 그리고 빗물이 빚어낸 강렬하고도 섬세한 결을 보는 일은 걷는 자에게만 주어지는 특별한 선물이다.

분지의 바닥으로 내려오면 평지가 이어진다. 유타 향나무와 폰데로사 소나무가 후두만큼이나 빼곡하게 자라나 있어 마치 울창한 숲속을 산책하는 느낌이다. 기분 좋게 지저귀는 새소리와 설원을 재빠르게 뛰어다니는 황금빛 얼룩 다람쥐를 비롯한 야생동물을 만나는 일도 즐겁다. 중간쯤에 도달하면 길은 피카부 트레일과 만난다. 시간과 체력적 여유가 있는 사람이라면 이쪽으로 노선을 틀어도 좋다. 완만하게 이어지는 퀸즈 가든 트레일을 걸으며 온갖 모양의 돌기둥을 감상하다 보면 어느새 빅토리아 여왕을 꼭 빼닮은 후두를 알현하게 된다. 퀸즈 가든 트레일의 하이라이트, 퀸즈 빅토리아(Queens Victoria)다. 여왕과의 영광스러운 만남을 끝낸 뒤에는 선 라이즈 포인트로 이어지는 까마득한 경사길을 오를 차례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를 정도로 만만치 않은 구간이지만 정상에 도달하면 모든 고생을 잊게 하는 꿈 같은 풍경이 펼쳐진다. 다이내믹했던 후두 탐험을 끝마치고 림 트레일(Rim Trail)을 따라 선셋 포인트로 돌아온다. 토르의 망치의 길게 늘어난 그림자가 어느덧 낙조 시간임을 알려준다. 땅거미가 내려앉고 첨탑의 도시는 점차 암흑 속으로 사라진다. 대신 하늘에는 숨 쉴 수 없을 만큼 빼곡하게 들어찬 별들이 달보다 환하게 빛나고 있다.

미국 3대 캐니언으로 불리는 그랜드 캐니언(Grand Canyon), 자이언 캐니언(Zion Canyon), 브라이스 캐니언(Bryce Canyon)을 여행한다는 것은 지구의 나이테를 세는 일과 같다. 호수, 내해, 사막, 늪지, 삼림에 다양한 퇴적암층이 쌓아 올려 생성된 거대한 지층대, 그랜드 스테어케이스(Grand Staircase)에 차례대로 있는 이들은 지구의 20억 년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지층대의 최상층부인 분홍색 절벽(pink cliff)에 자리한 브라이스 캐니언은 3대 캐니언 중 가장 최근에 형성된 막내 지층이다.

다른 캐니언에 비해 규모는 크지 않지만 그 어느 곳보다 섬세하고 우아한 풍경과 색채를 자랑한다. 억겁의 시간 동안 빗물이 조각해 만들어낸 천연 첨탑 ‘후두(Hoodoo)’가 보여주는 세상은 마치 숨겨져 있던 신의 도시를 찾은 듯 신비롭다.

유타=고아라 여행작가 minstok@naver.com

여행정보

브라이스 캐니언과 가장 가까운 공항은 네바다주의 라스베이거스 공항 혹은 유타주의 주도인 솔트레이크시티 공항이다. 두 곳 모두 약 420㎞ 떨어져 있으며 자동차로 4시간 정도 걸린다. 브라이스 캐니언 국립공원은 연중 무휴며 입장료는 차량 한 대당 30달러, 1주일간 유효하다. 3대 캐니언인 자이언 캐니언과 그랜드 캐니언을 비롯해 주변 국립공원을 함께 여행할 계획이라면 미국 국립공원 연간 패스(80달러)를 구매하는 게 훨씬 경제적이다.

고원지대다 보니 한여름에도 일교차가 큰 편이다. 브라이스 캐니언 국립공원에서 자동차로 약 5분 거리에 있는 브라이스 캐니언 시티는 브라이스 캐니언 국립공원을 가장 편하게 즐길 수 있는 베이스캠프다. 브라이스 캐니언과 역사를 함께 시작한 도시로 베스트웨스턴플러스 브라이스캐니언그랜드호텔을 비롯한 다양한 숙박시설은 물론 유서 깊은 루비스인 레스토랑, 마트, 세탁소 등 여행에 필요한 모든 편의시설이 모여 있다.

브라이스 캐니언에서 약 184㎞ 떨어진 캐피톨 리프 국립공원과 익살스러운 모양의 후두가 인상적인 고블린 밸리 주립공원도 함께 여행하길 추천한다.

취재협조 미국 관광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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