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제로'에 공공기관 인턴채용 올스톱… 청년실업난 악화

입력 2017-09-17 18:13   수정 2017-09-18 09:52

'착한 규제'의 역설 - 노동 규제

국책연구기관 인력 확충 딜레마
정원·예산 정해진 공공기관
정규직 즉시 충원 어렵고 계약직 고용도 부담 느껴

청년고용 할당 5%로 확대?
신규채용 줄이는 '꼼수' 우려

최저임금 인상 부작용
아파트 경비원 실직 위험
중소기업도 "채용 여력 없다"
대·중기 임금격차만 확대



[ 심은지 기자 ] 산업연구원은 지난 6월 말 비정규직 연구원 세 명이 회사를 나간 뒤 추가 인력을 충원하지 못하고 있다. 예년 같으면 바로 채용 공고를 띄우지만 정부가 ‘비정규직 제로(0) 선언’을 한 뒤 계약직 연구원을 새로 채용하는 게 부담돼서다. 그렇다고 정규직 연구원을 바로 채용할 수도 없다. 국책연구기관이기 때문에 정원과 예산(인건비)을 마음대로 조정할 수 없는 구조다. 산업연구원 관계자는 “연구직은 일반 행정직과 달리 상시·지속적이지 않은 수탁과제가 많아 일시적으로 인력을 구하는 경우가 많다”며 “지금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임시방편으로 다른 연구원들이 급한 업무를 나눠서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자리 정책이 노동시장의 규제로 작용하면서 곳곳에서 부작용을 드러내고 있다. 공공기관 비정규직 전환 정책이 오히려 비정규직의 일자리를 뺏는 상황이 이 같은 경우다. 최저임금의 가파른 인상도 영세 자영업자의 고용인원 감축과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임금격차를 심화시켜 오히려 양극화를 더 키울 개연성이 높다. 전문가들은 “노동시장도 수요와 공급, 가격(임금) 등이 작용하는 시장이라는 사실을 간과해선 안 된다”고 입을 모은다.


◆일자리 규제 시험대 ‘공공부문’

새 정부는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정책과 고용영향평가제, 청년고용할당제 등 새 정책 타깃을 모두 공공부문으로 삼았다. 법 개정이나 노사 간 타협이 꼭 필요한 민간부문보다 공공부문 정책을 쉽게 적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도입이 쉬운 만큼 부작용도 빨리 드러난다. 비정규직 1만 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고 나선 인천공항공사가 대표적이다. 인천공항공사는 지난 5월 ‘비정규직 제로(0) 선언’ 직후 15년간 인천공항 내 엘리베이터를 정비하던 업체를 새로 바꿨다. 새 용역업체는 바로 근로자 절반 이상을 해고하겠다고 통보했다. 이후 여론의 반발이 거세지자 뒤늦게 해고를 취소했다.

내년부터 확대 적용하는 청년고용할당제도 부작용이 우려되는 정책 중 하나다. 이 제도는 청년 고용을 늘리자는 목적으로 공공기관은 정원의 3% 이상의 신규 직원을 매년 청년으로 채용하도록 한 제도로, 문재인 정부가 5%로 확대 적용하기로 했다. 현행 3% 기준에서도 대상기관 408곳(2015년 기준) 중 122곳(약 29.9%)이 지키지 못하고 있는 만큼 신규 채용인원을 줄이는 등의 ‘꼼수’가 나올 것이라는 우려다. 공공부문의 일자리 정책은 민간부문까지 파급력이 미친다. 민간 기업은 이미 비정규직 채용 규모를 줄이면서 정규직 전환 정책을 대비하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는 현재 36명인 비정규직을 장기적으로 절반 수준으로 줄인다는 계획이다.

◆최저임금 급격한 인상의 부작용

최저임금의 가파른 인상은 일부 직종에는 대량 실직사태를 불러일으킬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아파트 경비원이나 영세 중소기업 근로자들이 대표적이다. 고용업체에서 임금 부담을 견디지 못하고 인력 감축을 택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아파트 관리업체에서 경비원 임금 인상과 관련해 정부 지원을 받을 수 있느냐는 문의가 빗발치고 있다”며 “지원이 없으면 대규모 해고가 불가피하다는 하소연들”이라고 말했다.

반면 대기업이나 우량 중소기업들은 최저임금 인상을 견딜 여력이 있기 때문에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임금격차가 커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한국고용정보원이 17일 발표한 ‘지역별 임금 격차 및 최저임금 미만 적용 근로자 현황 분석’ 보고서를 보면 최근 3년간 평균 임금인상률과 내년도 최저임금을 적용하면 내년도 임금노동자 중 최저임금 미만자 비중이 20.9~21.3%를 기록할 전망이다. 지난해에는 이 비율이 13.3%였다. 윤정혜 한국고용정보원 연구원은 “최저임금 미만자 비중이 높아지면 임금 격차가 커지고 소득분배도 악화된다”고 설명했다.

심은지 기자 summi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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