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블라인드 채용, 맞춤형으로 유연하게 해야

입력 2017-09-17 18:41  

조직에 따라 감출 정보 달리하고 평가자는 편견 버리게 훈련시켜야
대학교육도 직무능력 향상 초점을

전상길 < 한양대 교수·경영학 >



필자가 재미있게 보는 TV 프로그램 가운데 ‘복면가왕’이라는 프로가 있다. 나이, 신분, 직업을 복면 뒤에 숨기고 실제 목소리만으로 실력을 뽐낸다. 청중은 모든 선입견을 뒤로하고, 오로지 실력만으로 평가한다. 그간 그룹의 리드 보컬에 묻혀 자기의 음악적 역량을 충분히 보여줄 ‘기회’를 갖지 못한 가수에게는 본인의 음악적 역량을 온전히 드러낼 수 있는 좋은 기회인 셈이다.

우리 사회의 선발 및 채용구조를 지원자 모두에게 자기 실력 외에 그 어떤 것에 의해서도 좌우되지 않도록 만들어 볼 수는 없을까. 그래서 참여한 모든 이들에게 역량 발휘의 공정한 기회를 줄 수는 없을까.

정부가 이달부터 모든 공공기관에 ‘블라인드 채용’을 도입하기로 했다. 입사지원서에 직무와 관련된 정보만을 토대로 지원자를 채용하는 방식이다. 출신지역, 가족관계, 학교 이름 등 편견이 개입될 여지가 있는 신상정보는 배제하고 ‘실력’만을 평가하겠다는 것이다.

신중한 제도 도입만 뒷받침된다면 ‘공정한 능력주의 사회’를 정착하고, 4차 산업혁명이 요구하는 ‘경험의 다양성’과 ‘관계의 역동성’을 구조화하는 데 실마리를 제공하는 의미 있는 출발이 될 것으로 본다.

대학을 중퇴한 애플의 스티브 잡스나 마이크로소프트(MS)의 빌 게이츠, 또 30여 개 회사에서 퇴짜를 맞은 알리바바의 마윈 같은 인재는 한국의 공공 부문이나 민간 부문의 직장 어디를 지원해도 사회적 배려를 하지 않는 이상 합격은 어렵게 돼 있다.

이제 공공 부문이든 민간 부문이든 ‘고객’이 다양해지는 만큼 보다 다양한 경험을 가진 젊은이들이 일할 수 있는 기회가 필요하고, 그 출발선이 블라인드 채용이라고 필자는 본다. 즉 편견 없는 채용, 실력 위주 채용이다.

향후 민간 기업에도 블라인드 채용이 확산할 것을 감안해 두 가지 제언을 하고자 한다. 첫째는 블라인드 채용의 내용을 각 조직의 목적에 맞도록 ‘맞춤형’으로 유연하게 할 필요가 있다. 기본 전제는 개인 신상정보는 블라인드로 하되, 조직에 따라서는 직무수행을 평가하는 데 불필요한 편견을 준다고 판단되는 내용 중심으로 블라인드 처리를 할 필요가 있다. 즉 어떤 기업은 이름, 성, 나이, 출신 학교 등을 지원서에서 삭제하지만, 어떤 조직은 조직이 특정한 편견을 가질 수 있는 학력정보만 블라인드 처리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 선택권을 해당 조직에 맡기자는 것이다.

둘째는 편견이나 선입견은 비판의 대상이라기보다는 이해와 극복의 대상이다. 반드시 평가자 훈련을 통해 편견을 최소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블라인드 채용 제도의 도입과 관련해 국가 차원에서 같이 고민해야 할 사항도 있다. 블라인드 채용을 취업 문제에만 국한해서 접근할 것이 아니라 낙후된 우리의 대학 교육을 전면적으로 혁신할 수 있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이제 학교는 학생들의 직무능력 향상을 도모하기 위한 교육 방법의 일대 혁신을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채용 시장에서의 변화는 교육의 지형까지 변화시킬 원동력이 될 수 있다.

지금 한국은 창조적 혁신을 통한 신성장동력이라는 신대륙을 찾아야 하는 절체절명의 상황이다. 위기를 벗어나 신대륙을 발견하고자 한다면 과거 성공 방식으로 그려진 옛날 지도를 버려야 할 때다.

전상길 < 한양대 교수·경영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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