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종필 기자 ]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 8월 설문조사 형식을 빌려 대기업에 영업기밀을 포함한 전방위적인 자료 제출을 요구한 것으로 밝혀졌다. 공정위가 조사권 남용 우려를 피해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설문조사에 참여한 것으로 유도하려 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경제신문이 공정위가 각 대기업(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에 발송한 공문과 기업 측이 회신 의뢰를 받은 설문조사 형식을 17일 단독 입수한 결과 이같이 드러났다.
공정위는 공문에서 “본사-대리점 간 거래질서의 공정화를 위한 정책 마련 및 제도 개선의 기초자료로 활용하기 위한 것”이라며 “공정거래법 위반 행위 조사가 아니다”고 설명했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김종석 자유한국당 의원 측 자료에 따르면 공정위가 프랜차이즈 본사 격인 대기업에 요구한 자료는 △상품·용역 유통구조 △대리점 현황 △대리점별 거래 현황(연간 거래액, 계약 체결 형태, 위탁수수료율, 계약 기간 등) △최근 3년간 대리점별 매출 △계약서 사본 △대리점 판매가격 △대리점과 온라인 간 가격 차이 △판매장려금 등의 항목이다.
설문 회신 요구를 받은 기업 측 관계자는 “상식적으로 설문조사 항목과는 거리가 멀고 여기에 답하려면 본 업무를 팽개치고 몇날 며칠을 매달려도 회신하기 어렵다”고 하소연했다. 설문 항목에는 “(가맹점주와 본사 간) 세부 계약조건 설정을 위한 협상 절차를 자세히 서술해달라”는 식의 질문도 있다. 경쟁회사로 유출되면 경영 전략이 그대로 노출될 가능성이 있는 대목이다. 특히 가맹점주의 주민등록번호 등 민감정보가 있는 계약서 사본까지 요구한 것은 지나치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 의원은 “2013년 남양유업 사태 등 대리점 거래 불공정 관행 개선을 위한 조사는 필요하지만 조사의 법적 근거가 없어 설문조사 등으로 우회해 전수조사를 한 것은 문제”라고 비판했다.
박종필 기자 j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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