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시큰둥한 정부사업에 "돈 보태라" 요구한 산업부

입력 2017-09-19 18:09  

자율차 R&D인력 확충에 수백억 매칭펀드 제안

"정부가 사업 벌여 놓고 기업 동원하나"
산업부 "실무진 아이디어 기업들에 소개한 것일 뿐"



[ 이태훈 기자 ] 지난 15일 서울 양재동의 한 사무실에 현대자동차 LG전자 SK텔레콤 쌍용자동차 르노삼성자동차 등 다섯 개 회사 관계자들이 모였다. 산업통상자원부로부터 “자율주행자동차와 관련한 회의를 하자”는 소집 통지를 받고서다. 이들 기업은 자율주행차 등 미래형 자동차에 관심이 많다는 공통점이 있다.

정확한 영문도 모른 채 모인 기업인들 앞에서 산업부 관계자는 ‘미래형 자동차 연구개발(R&D) 전문인력 양성’이라는 정부 사업 얘기를 꺼냈다. 문재인 정부 5년간 자율주행차 분야에서 180명가량의 석·박사 인력을 육성하는 사업으로 올해 예산 15억원이 배정됐다. 산업부 관계자는 “정부가 양성 인력을 애초 계획보다 많은 500명으로 늘리는 것을 고려 중이다. 업계가 매칭펀드 방식으로 인재 양성 풀을 늘려보자”고 제안했다. 정부 사업에 기업들이 돈을 보태라고 요청한 것이다.

R&D사업을 정부와 민간이 공동 진행하는 것은 과거에도 흔히 있던 일이다. 하지만 이날 회의에 참석한 한 관계자는 “기업들이 현장에서 필요로 하는 인력이 다를지도 모르는데 수요조사도 없이 정부가 일방적으로 사업을 벌여놓고 기업을 동원한다는 느낌이 강했다”고 말했다.

산업부가 R&D 전문인력 양성 기관으로 서울지역 사립대 한 곳과 지방대 세 곳을 지정한 것도 기업들은 불만이다. 다른 참석자는 “기업 자체적으로 전문인력 양성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데 정부가 정해준 몇몇 대학에서만 사람을 뽑을 이유가 없다”며 “돈은 돈대로 쓰고 검증되지 않은 인력까지 떠안아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이 자리에서 구체적인 금액은 제시하지 않았다. 업계에서는 100억원 이상을 민간이 부담해야 할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180명을 양성하는 데 5년간 총 75억원이 든다고 했으니 500명이면 200억원 이상이 필요하다는 것 아니냐”며 “정부 예산 75억원을 뺀 나머지를 민간에서 조달하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였다”고 했다.

산업부 관계자는 이날 회의 소집 배경 등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실무진 차원에서 나온 여러 아이디어 중 하나를 기업들에 소개한 것”이라며 “기업들로부터 자금 조달을 하겠다고 결정한 게 아니다”고 해명했다. 이어 “내년에는 미래형 자동차 연구개발(R&D) 전문인력 양성 예산이 정부안 기준으로 38억원이 책정됐다”며 “기업에 많은 부담을 지울 생각은 없다”고 했다.

이날 회의에서 완성차 업체 쪽 참석자들은 정부 사업에 부정적 의견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자체 인력 양성 프로그램을 확대하는 게 더 바람직하다는 이유에서다. 산업부 관계자도 “기업들이 부정적이라면 우리도 강제할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산업부는 현 정부 출범 이후 ‘탈(脫)원전 전위부대로 전락해 산업 정책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백운규 산업부 장관은 최근 주요 업종별 간담회를 하며 사드 보복과 최저임금 인상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기업들에 “일자리와 국내 투자를 늘리라”는 말만 반복해 기업들의 원성을 샀다. 백 장관은 지난달 대통령 업무 보고 때 산업 정책은 제외하고 에너지와 통상 정책만 보고했다.

현 정부 출범 이후 100일 동안 발표한 주요 정책 55건 가운데 ‘산업 육성책’은 단 한 건도 없다. 산업부에서 산업 정책을 담당하는 양대 축인 산업기반실장과 산업정책실장 자리는 한 달 가까이 공석이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미래산업 정책은 제시하지 못하면서 기업들을 단순히 돈 나오는 창구로 생각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과거에는 산업부가 기업들의 처지를 가장 잘 이해해주는 부처였다”며 “최근에는 장관이 산업용 심야 전기요금 인상을 예고하는 등 정권 코드에 맞춰 기업에 부담이 되는 정책을 내는 데 앞장서는 것 같다”고 했다.

이태훈 기자 bej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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