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문재인 대통령과 뉴욕 투자전문가의 접대비

입력 2017-09-20 18:30  

월가서 소외되는 한국 투자전문가들
김영란법에 발목 잡혀 네트워킹 위축

김현석 뉴욕 특파원 ealist@hankyung.com



[ 김현석 기자 ] 2007년 1월 말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채권투자 행사인 미국증권화포럼(American Securitization Forum 2007). 한국 자산운용사의 한 펀드매니저는 미국 투자은행(IB) 영업담당자들과 수십 차례 미팅룸에서 만났다. 당시 투자업계의 최대 히트상품인 부채담보부증권(CDO)을 사라는 권유를 수없이 받았다. 같은 신용등급의 채권 중에서 압도적으로 높은 수익률을 자랑하는 CDO에 그는 구미가 당겼다.

그는 포럼 마지막날엔 한 IB가 초청한 골프 행사에 참석했다. 골프장 옆에 건설된 호화주택들이 텅텅 빈 걸 유심히 봤다. 물어보니 지은 지 1년이 넘었는데 255채 중 단 2채만 팔렸다고 했다. 그런 집들이 라스베이거스뿐 아니라 플로리다 캘리포니아 등에도 수두룩하다는 설명이었다. ‘미국 부동산시장에 커다란 거품이 끼었다’는 걸 직감한 그는 CDO를 사지 않기로 맘먹었다.

그의 자산운용사는 2008년 말 미국발(發) 글로벌 금융위기 때 한 푼도 잃지 않았다. 당시 우리은행, 삼성생명 등은 CDO 투자로 조(兆) 단위 손실을 봤다. 이처럼 투자업계에선 공식 미팅보다 식사와 골프 등 비공식 만남(네트워킹)을 통해 정보 교환이 이뤄진다. “인지상정이다. 사적으로도 자주 만나고 친해져야 알짜 정보를 알려준다”는 게 한 펀드매니저의 말이다.

‘투자의 중심’ 뉴욕에는 국민연금과 한국은행 한국투자공사(KIC) 등이 모두 나와 있다. 국민연금은 550조원 규모의 연금자산을, 한국은행은 3800억달러의 외환보유액을, 그리고 KIC는 1300억달러에 육박하는 정부 자산을 운용하고 있다.

그 돈을 굴리는 임직원들이 정작 월가의 네트워킹에서 소외되고 있다. 정보를 접할 기회가 막힌 건 작년 9월부터다. 부정청탁금지법(김영란법) 때문이다. 물가가 세계 최고 수준인 뉴욕에서 25달러(3만원) 이내에서 밥 먹으며 친분을 만들라는 건 하지 말라는 얘기와 같다.

뉴욕시의 높은 집세에 밀려 뉴저지주(州)에 사는 기자는 맨해튼으로 출퇴근하는 데 하루 톨게이트비 15달러, 주차비 35~40달러를 낸다. 점심값 20~30달러(맥도날드나 푸드트럭에서 사먹지 않는다면)에 팁, 기름값 등을 더하면 100달러는 순식간에 나간다. 이런 뉴욕에서 식사 3만원 가이드라인을 지키라는 게 김영란법이다. IB들도 김영란법을 안다. 그러다 보니 네트워킹은 줄고 사무실에서 티타임을 가끔씩 갖는 게 전부다. 밥을 사면 되지 않냐고? 국민연금 등은 모두 공공기관이라 뉴욕 사무소장의 영업추진비도 연간 100만원 수준에 불과하다. 글로벌 금융 1번지 뉴욕에 보내놓고 정작 알짜 정보를 얻을 기회는 틀어막은 게 현실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20일 뉴욕에서 한국 투자설명회인 ‘세계 금융경제인과의 대화’를 가졌다. 최고급 호텔에서 오찬을 하며 골드만삭스 씨티 블랙스톤 등 IB 최고경영자(CEO)들과 만났다. 1인당 몇백달러는 족히 나왔을 것이다. 예산을 쓰는 공식 행사이니 김영란법 적용을 받지 않는다. 이곳에서 문 대통령은 한국 시장이 안전하니 계속 투자해달라고 설득했다. 사무실에서 만나 딱딱한 얘기를 하는 것보다 나으니 그렇게 식사 자리를 마련한 것이다.

한국 주식을 사달라는 대통령의 마케팅은 분명 좋은 일이다. 뉴욕에 파견된 전문가들이 국민연금 외환보유액 등을 잘 지키고 잘 불리는 일도 못지않다. 뉴욕을 두 차례나 경험한 문 대통령이 곰곰이 생각해볼 문제다.

김현석 뉴욕 특파원 ealis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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