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실 칼럼] 혁명보다 정치를 택한 에너지

입력 2017-09-21 18:16  

4차 산업혁명? 국가전략이 없다
의문과 모순 투성이 에너지정책
'장기파동'에서 밀려날 준비하나

안현실 논설·전문위원·경영과학박사 ahs@hankyung.com



구글 검색창에서 ‘4차 산업혁명’을 치면 약 65만1000개(9월21일 기준)의 검색결과가 나온다. 영어로 ‘4th Industrial Revolution’을 치면 나오는 약 170만 개와 비교하면 3분의 1을 넘는다. 4차 산업혁명 용어가 한국에서 얼마나 유행하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지표다. 하지만 ‘한국+4차 산업혁명’ 하면 손에 잡히는 게 없다. 구호는 넘쳐나지만 전략이나 액션은 없기 때문이 아닐까.

‘소득주도성장 드라이브’를 걸던 정부가 ‘혁신성장’을 말하기 시작했다. 청와대 경제보좌관실과 국민경제자문회의, 기획재정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에서 잇달아 혁신성장 태스크포스(TF)를 만들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소득주도성장론에 비해 혁신성장 쪽은 미처 준비를 하지 못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탄핵정국을 거치며 갑작스럽게 출범한 정부임을 감안하면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혁신성장에서 내놓을 결과물이 4차 산업혁명 등 산업 비전을 담아야 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정부 출범에 맞춘 듯이 진행돼온 탈원전 선언, 전력수요 전망을 낮춘 수급계획 등 일련의 움직임이 그렇다. 산업 밑그림이 그려진 뒤 나와야 할 에너지 방향이 미리 정해져 있었다면, 에너지에 산업을 거꾸로 맞추는 게 되고 만다.

여기에 에너지 수급계획이 경제주체들에게 설득력 있게 와닿지 않는다면 문제는 더 심각하다. 물론 박근혜 정부가 에너지 수요를 과다하게 전망했다는 지적엔 수긍이 가는 측면도 없지 않다. 그렇다고 정부가 널뛰기식으로 수요를 줄이는 전망을 내놓는다는 건 그 자체로 ‘정부 실패’나 다름없다.

내용적으로도 의문과 모순이 적지 않다. 어떻게든 수요 전망을 낮추려다 보니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한 전력수요는 별 영향이 없다는 가정을 세운 듯하다. 빅데이터, 컴퓨팅 등으로 인한 전력소비 증가요인은 과소평가하고, 스마트그리드 등 에너지 사용 효율성 증대를 통한 전력소비 감소요인은 과대평가하는 스탠스가 그렇다. 문제는 이런 가정이 맞느냐는 것이다.

미국반도체협회는 2015년 ‘정보기술(IT)혁명 재(再)부팅’이란 보고서를 낸 바 있다. 보고서가 미래 IT의 에너지 수요를 바라보는 시각은 한국과 사뭇 다르다. 데이터가 폭증하고 있다며 ‘에너지 효율적인 센싱과 컴퓨팅’을 절박한 과제로 제시한다. 이대로 가면 사물인터넷(IoT), 인공지능(AI) 등이 ‘에너지 벽’에 부딪힐지 모른다는 경고로 들린다.

스마트그리드 등으로 에너지 소비가 크게 줄 것이란 전망도 문제가 있다. 4차 산업혁명 기술이라고 해도 이를 수용할 수 없는 환경이면 헛일이다. 한국처럼 공기업 위주 시장구조, 가격 및 진입 규제, 에너지 정보의 독점화 상황에선 특히 그렇다. 정부가 전력산업 구조개편은 미룬 채 에너지와 IT 융합으로 전력소비 감소 운운하는 건 자기모순이다. 4차 산업혁명이 태동기여서 전체 에너지에 미칠 영향이 불확실하다는 주장은 변명에 가깝다. ‘에너지 백년대계’는 기대하지도 않는다. 적어도 그 반에 해당하는 50~60년 주기로 반복돼 왔다는 ‘장기파동설’, 이른바 ‘콘드라티예프 사이클’에 눈을 감는 건 무책임하다.

경제학자 조지프 슘페터 등은 장기파동을 기술혁명으로 설명했다. 두말할 필요도 없이 기술혁명을 떠받친 건 에너지다. 최근 에너지 소비가 ‘56년 사이클’을 보인다는 전략적 예측 전문가 시어도어 모디스의 주장은 그래서 더욱 눈길을 끈다. 새로운 산업혁명 붐이 일어나는 초반부에 에너지 소비가 예상보다 증가할 가능성을 열어둬야 하는 이유다. ‘피크관리’, ‘컨틴전시 플랜’ 등의 대응책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럼에도 제8차 전력수급계획(2017~2031년)은 반대로 가겠다는 쪽이다. 혁명보다 정치를 의식한 때문이라면 한국은 다가오는 장기파동에서 밀려날 준비를 하는 것과 다를 바 없지 않은가.

안현실 논설·전문위원·경영과학박사 ah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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