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기업인 국감증인 채택 압박…지역 민원과 '딜'하는 의원들

입력 2017-09-22 17:57   수정 2017-09-26 11:06

복지위, 환경오염 빌미로 유화업계 CEO 대거 포함
"근거 약하다" 채택 전 제외

'민원처리 위해 악용' 논란



[ 고재연 기자 ] 지난 21일 오전 10시 국회 본관 601호.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를 앞두고 나온 ‘2017년도 국정감사 일반증인 및 참고인 명단’에는 박진수 LG화학 부회장, 허수영 롯데그룹 화학사업부문 사장, 문종박 현대오일뱅크 사장, 김희철 한화토탈 사장 등이 포함됐다.

‘햄버거병 논란’ ‘생리대 파문’ 등의 현안이 산적한 보건복지위가 ‘뜬금없이’ 석유화학업계 최고경영자(CEO)들을 증인으로 채택한 것이다.

이들을 국감 증인으로 부르자는 요청은 성일종 자유한국당 의원이 제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명목상 이유는 “석유화학단지에서 오염물질이 배출되면서 환경오염을 유발하고, 지역 주민들의 건강을 위협하고 있다”는 것이었지만 속내는 따로 있었다. 성 의원의 지역구인 충남 서산·태안 주민들이 대산석유화학단지에 입주한 이들 기업 때문에 피해를 보고 있는 만큼 지역 사회에 ‘눈에 보이는’ 기여를 하라는 것이다.

여수의 GS칼텍스는 1100억원을 들여 문화예술공원인 예울마루를 건립했고, 울산의 SK이노베이션도 1020억원을 들여 울산대공원을 조성했다. 이와 비슷한 수준의 주민 보상이 필요하다는 것을 ‘압박’하기 위해서라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기업인 증인 채택을 빌미로 지역구 민원을 들이댄 셈이다.

이번 증인으로 채택된 기업들의 대관팀에서는 비상이 걸렸다. 한 기업의 대관 담당자는 “지역 사회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지 대책을 강구하겠다고 설득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결국 전체회의 의결 직전에 이들 CEO 명단은 빠졌다.

올해 국감에서는 역대 최대 규모의 기업인 증인 소환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와 공공기관이 지난 1년간 일을 제대로 했는지를 살펴보는 것보다 기업인 몰아세우기에 집중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여야가 공수를 가리지 않고 일단 ‘부르고 보자’는 식이다.

국감은 지역구에 자신의 존재감을 알릴 수 있는 적합한 무대이기도 하다. 의원들이 자신의 소신과 상관없이 지역구 민원 처리를 위해 국감 증인 채택을 악용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고재연 산업부 기자 ye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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