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상은 기자 ] 재닛 옐런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이 글로벌 금융위기 후 지속적으로 유지해 온 양적완화(QE) 정책에 본격적인 이별을 고했다. 작년 12월부터 기준금리를 세 차례에 걸쳐 0.25%포인트씩 올린 데 이어 지난 20일에는 만기가 돌아오는 보유 채권의 원금을 조금씩 상환받는 방식으로 보유자산을 축소하겠다고 공표했다. 중앙은행을 ‘정상화’하겠다는 것이다. 빠르든 늦든 다른 주요 중앙은행도 Fed의 결정을 따라가게 될 것이다. 10년 저금리 시절은 그러면 이제 안녕인 것일까. 세계는 금융위기 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그리 쉽진 않으리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어데어 터너 전 영국 금융감독청장은 지난 4일 프로젝트신디케이트에 기고한 글 ‘정상화라는 환상’을 통해 저금리 기조가 근본적으로 해소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지적했다. 2020년까지 Fed가 기준금리를 현재 연 1.0~1.25%에서 연 2.5% 이상으로 올릴 수 있을지도 회의적이라고 했다.
기본적으로 수요가 살아나지 않고 있어서다. 중앙은행들이 그렇게 돈을 풀어댔음에도 불구하고 2007년부터 지난해까지 연 평균 명목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은 미국 2.8%,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1.5%, 일본 0.2%에 불과했다. 미국 물가상승률은 Fed의 목표치(연 2%)를 5년째 밑돌고 있다. 실업률이 떨어지면 물가가 오른다는 전통적인 필립스 곡선은 작동하지 않고 있다. 옐런 의장은 20일에도 “물가상승률이 약한 원인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고백했다.
이런 가운데 전 세계 부채는 급격히 증가했다.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세계 전체 GDP 대비 공공 및 민간 부채비율은 2007년 3월 약 180%에서 지난 3월 약 220%까지 가파르게 높아졌다. 터너는 금리를 종전 수준으로 정상화할 경우 이자비용이 급격히 증가해 세계 경제가 또 다른 침체에 빠질 가능성을 감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물가 때문이 아니더라도 지금은 중앙은행들이 금리를 마음대로 팍팍 올릴 여건이 못 된다는 얘기다.
터너의 주장 가운데 특히 흥미로운 대목은 크리스토퍼 심스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의 주장을 소개하며 저금리 정책이 경제를 부양한다는 통념에 의문을 제기한 부분이다.
금리를 낮춰봐야 소용없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그것이 ‘확장적 정부 재정’으로 이어질 경우에만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을 분리해서 생각하고 중앙은행 독립성을 강조하는 통상적인 경제이론과는 상당히 결이 다른 주장이다.
심스 교수는 이와 관련해 지난해 ‘재정·통화정책과 중앙은행 독립성’이라는 글을 통해 “표준 경제모델이 금리 상승으로 물가상승을 잡을 수 있다고 설명할 때는 정부의 이자비용 지출이 감소해 재정 여력이 증가하는 것을 가정하고 있다”고 했다. 1980년 브라질에서 금리를 올렸을 때는 정부가 늘어난 이자비용 감당을 위해 국채를 더 찍어내리라는 시장의 전망이 작동해 되레 물가가 상승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다소 복잡해 보이지만, 요컨대 통화정책과 물가상승 간의 관계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처럼 단선적이지 않고 정부의 재정지출 여력이라는 경로를 통해 작동하기 때문에 물가를 끌어올릴 수도 있지만 끌어올리지 못하거나 오히려 끌어내릴 수도 있다는 뜻이다.
터너 역시 심스 교수의 주장에 깊이 동의하고 있다. 그는 미국이 유럽보다 명목 GDP가 빠르게 증가한 것을 미국의 재정적자 비중이 2007년 이후 GDP 대비 평균 7.2%로 유럽(3.5%)에 비해 컸던 것과 관련지었다. 현재의 경기 회복세는 결국 통화정책 그 자체가 아니라 재정의 효과가 있었던 것 아니냐는 관점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후 중앙은행들이 사용한 양적완화 정책은 세계 경제사에서 유례가 없는 거대한 실험이었다. 마이너스 금리까지 넘나드는 이 비전통적인 정책이 최종적으로 성공할지 실패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의 오랜 구분도 이 가운데서 도전받고 있다.
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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