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파견' 낙인 찍어 사실상 하청 금지…대기업에 직접고용 압박

입력 2017-09-24 18:51   수정 2017-09-25 10:16

'불법 파견' 논란 3대 쟁점


[ 강현우 기자 ] 최저임금 대폭 인상에 이어 아웃소싱(외주화)을 사실상 금지하는 ‘불법파견’이 산업계 암초로 떠오르고 있다. 여야 정치권이 이번 정기국회에서 근로시간 단축(68시간→52시간)까지 합의하면 국내에서 공장을 운영하는 게 불가능해진다는 기업이 속출하고 있다. 특히 불법파견은 파리바게뜨 사례에서 보듯 하청을 활용하는 사업장에선 언제든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기업들의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노무 부문에 특화한 경제단체인 한국경영자총협회에는 하루에도 수십 건 ‘우리 회사도 하청업체 직원을 직고용해야 하느냐’는 문의가 들어오고 있다. 파견·하청과 관련한 주요 쟁점을 정리했다.


(1) 하청은 다 불법 파견인가
하청·불법 파견 명확한 구분 어려워…과잉 규제 우려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은 경비·청소 등 32개 직종 외 모든 영역에서 파견을 쓰면 원청이 직접 고용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기업들은 아웃소싱 방안으로 파견 대신 도급을 주로 활용한다. 문제는 파견과 도급의 경계가 모호하다는 점이다. 법원은 원청이 하청 근로자에게 업무 지시·감독을 하면 파견으로 본다. 그러나 업무 지시·감독의 정의와 범위는 여전히 명확하지 않다.

고용노동부는 파리바게뜨가 하청업체 제빵기사들의 출퇴근을 관리하고 인사 평가까지 했기 때문에 불법파견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파리바게뜨는 “가맹사업법에 따른 정당한 지원이며 협력업체에 참고 차원에서 자료를 제공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비슷한 업태의 뚜레쥬르는 “운영 방식은 파리바게뜨와 비슷하지만 본사에서 제빵기사들에게 직접 업무지시를 하지 않기 때문에 위법 사항은 없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전국 매장에서 동일한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 프랜차이즈에서 본사의 업무 지시가 없을 수 없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고용부가 다른 기업들에 대한 근로감독을 강화할 방침이어서 향후 불법파견 판정을 받는 기업이 더욱 늘어날 것으로 재계는 내다봤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파견과 도급 구분과 같은 해묵은 논쟁을 멈추려면 파견 규제를 풀어야 한다”고 분석했다.

(2) 법원 판결 왜 오락가락하나
기준 불명확해 재판부 성향에 따라 판결 달라져

법원 판결도 일관성을 찾기 어렵다. 같은 타이어 업종의 한국타이어와 금호타이어 사건에서 법원은 엇갈린 결론을 내놨다. 금호타이어 사내하청 근로자들이 제기한 소송에서 광주고등법원은 ‘전원 불법파견’이라고 판단했다. 반면 서울고등법원은 한국타이어 사건에서 ‘적법 도급’이라고 판시했다.

소송을 제기한 하청업체 근로자들의 업무는 반제품 운반·절삭, 물류, 타이어 검사 등으로 두 회사가 비슷했다. 두 법원이 불법파견 판단 기준으로 원청의 업무 지시를 내건 점도 같았지만 결론은 정반대였다.

현대·기아자동차 사건에선 법원이 하청업체 직원의 구체적 업무에 관계없이 전원 불법파견으로 인정해 논란이 일었다. 서울고법은 부품 운반, 출고 차량 점검·포장 등 이른바 ‘간접 공정’ 근로자도 전원 현대·기아차의 정직원으로 인정했다. 연구소에서 시제품을 제작하는 하청업체 직원도 마찬가지였다. 현대차와 직접 계약한 것이 아니라 현대차의 하청업체와 계약한 2차 하청업체의 직원까지 승소했다.

경총 관계자는 “애초에 기준이 불명확하다 보니 민주노총 등이 하청업체 조합원을 늘리기 위해 ‘원청 정규직으로 전환될 수 있다’는 식으로 소송을 부추기는 사례가 많다”고 지적했다.

(3) 왜 한국에서만 논란인가
獨·日 제조업 파견 허용…한국은 10년 넘게 논의만

정부가 기업에 불법파견을 활용했다며 직접 고용하라는 명령을 내리는 장면은 해외에선 좀처럼 보기 어렵다. 불법파견이라는 개념 자체가 한국에만 있기 때문이다.

독일은 2003년 노동개혁으로 건설업을 제외한 모든 업종에 파견을 허용했다. 독일 자동차 공장에 가보면 단순 업무는 파견직이, 특수 공정은 전문성을 갖춘 사내하청업체가, 높은 숙련도가 필요한 핵심 공정은 정규직이 나눠서 작업하는 장면을 쉽게 볼 수 있다. 비용을 줄이면서 완성도를 높이는 최적의 인력 배치가 가능하다.

일본도 2004년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 확보가 일자리 창출에 기여하고 실업문제를 해소할 수 있다’는 공감대 아래 제조업 파견을 허용했다. 노동자 보호가 강한 프랑스에도 파견 업종 제한은 없다. 국제노동기구(ILO)도 제조업 파견에 대해 ‘원칙 허용, 남용 금지’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제조업에 파견 근로를 허용하는 파견법 개정 논의가 10년 넘게 계속되고 있지만 진전이 없다. 2015년 노·사·정 대타협에서 뿌리산업(금형·단조 등 제조업의 기반이 되는 산업)과 고령자 파견 허용에 대한 공감대가 마련됐지만 정치권과 노동계의 반발에 밀려 무산됐다.

강현우 기자 hk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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