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신고리 공론화위원회 공정성 지켜야

입력 2017-09-24 21:07  

1차 여론조사 결과도 발표 않고
건설중단측 설명자료도 제출 안해
공론화 과정의 공정성 훼손 말아야

주한규 < 서울대 교수·원자핵공학 >



필자는 기왕에 출범한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 활동이 공정하고 합리적으로 진행되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1차 여론조사 결과 미발표 입장 고수라든지, 건설중단 측의 일방적인 주장이 수용되는 것을 보고 공론화위의 공정성과 합리성, 독립성과 권위에 대해 우려하게 됐다.

공론화위는 소위 밴드왜건 효과, 즉 대중이 조사 결과에서 나타난 대세를 따라 최종 판단할 것이라는 우려 때문에 1차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는 숙의 과정을 거치는 공론화 자체의 의미를 부정하는 자가당착적인 조치다. 지난 7월 초와 8월 말에 발표된 신고리 5·6호기 건설 여부에 관한 갤럽 조사 결과 건설 재개와 중단의 비율이 각각 37 대 41, 42 대 38로 나타났다. 그 차이가 근소해 판단에 영향을 줄 대세가 드러나지 않은 것이다. 한쪽이 대세로 나타났다고 하더라도 시민참여단 사람들이 숙의 내용과 무관하게 대세를 따라 결정할 것이라는 예상은 숙의 과정 자체의 의미를 퇴색하게 하는 불합리한 판단이다. 공론화위가 공정성과 절차적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공론화 과정의 투명성이 보장돼야 한다.

한편 건설중단 측은 최근 한 인터넷 신문과 성명을 통해 공론화 과정이 불공정하게 진행되고 있다며 공론화 이탈 가능성을 공표했다. 지난 대선 때 신고리 5·6호기 백지화를 내건 정부 여당이 이제는 중립을 지키겠다며 모든 발언과 활동을 중단했으므로 탈핵단체들만 고립무원의 싸움을 한다는 것이다. 반면 한국수력원자력과 국책기관들, 보수 야당들과 언론들은 대대적인 원자력 홍보를 한다고 비난했다.

이런 주장은 어불성설이다. 정부는 범(汎)부처적으로 에너지 전환 태스크포스(TF)를 만들었고, 에너지전환정보센터 사이트에 환경단체 주장을 무분별하게 게시해 확산시키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경주 지진 관련 원전 사고의 위험성만 강조하는 말과 전기요금을 5년 내 인상하지 않겠다는 발언 등을 통해 탈원전 정책을 적극 홍보하고 있다. 그러나 한수원, 한국원자력연구원 등 원자력 기관의 원자력 홍보 활동은 전면 금지된 상태다.

또 건설중단 측에서는 공론화위가 공론화 설명자료집 목차 설정과 관련해 불공정했다고 주장하며 정해진 기일 내에 자료집을 제출하지 않았다. 건설재개 측의 반박 보도자료에 따르면 자료집 목차는 서로 합의해 같게 하되 내용은 각기 작성해 상대 측의 사실 확인을 받은 후 미확인된 내용은 한쪽의 주장이라고 표기하기로 했다. 그런데 건설중단 측에서는 상호 합의가 안 된 일부 목차 항목에 대해 제3자인 공론화위가 제시한 제목을 문제 삼아 최종 자료집을 제출하지 않았다. 이에 따라 지난 16일 시민참여단 오리엔테이션에서는 이미 제작된 건설재개 측 자료집 배포도 무산됐다. 합의된 절차를 건설중단 측이 위반한 것을 공론화위가 수용한 것이다.

공론화위는 공론화 이탈 가능성을 공표한 건설중단 측 요구에 굴복한 것으로 보인다. 판이 깨지면 공론화위 존재와 활동의 의미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론화 과정의 공정성을 훼손하는 건설중단 측 요구가 더 이상 수용돼서는 안 된다. 남은 기간 동안 공론화위가 독립성과 권위를 유지하고 합리적이고 공정하게 숙의를 진행해야 최종 결과 수용에 잡음이 없을 것이다.

주한규 < 서울대 교수·원자핵공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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