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이 있는 아침] 오치균 '감'

입력 2017-09-25 18:21  

경제와 문화의 가교 한경


[ 김경갑 기자 ] 붓 대신 손으로 그림을 그리는 서양화가 오치균 씨(61)에게 어린 시절 감은 아름다운 풍경의 대상이라기보다는 배고픔을 채워주는 수단이었다. 대전이 고향인 그는 가을색이 짙어질 때면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형제들과 감 따는 게 일이었다. 열심히 따고 주워 잘 닦은 감을 어머니는 새벽 첫차를 타고 시장에 나가 팔았다. 유년시절 고향에 대한 기억이 이제는 그리움으로 변했고, 발갛게 익은 감은 어떤 시보다 강렬하게 바삭거린다.

2014년 완성한 이 그림은 홍시가 주렁주렁 달린 감나무를 사실적으로 잡아냈다. 시골집 뒤뜰 진홍빛 감과 가지들이 하늘을 향해 꿈틀거린다. 하늘에 박혀 있는 감들은 스스로 발화하는 노란 등불처럼 빛과 에너지를 힘껏 뿜어낸다. 가을바람에 일렁이는 움직임도 감지된다. 감들은 색과 빛, 공간과 시간을 넘나들며 현대인의 아련한 추억을 되살린다. 그림 바로 앞에서 보면 이건 감이 아니다. 진노란색 원일 뿐이다. 그러나 조금만 떨어져서 보면 사실적인 질감과 알록달록한 색감에서 미감이 넘쳐난다.

소설가 김훈은 “오씨의 감은 땅속의 물과 함께 하늘에 가득 찬 시간의 자양을 받아들여서 쟁여놓은 열매”라고 격찬했다. 추석이 얼마 남지 않았다. 감이 주렁주렁 열린 고향집이 그립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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