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블랙리스트와 화이트리스트

입력 2017-09-26 18:19  

홍영식 논설위원 yshong@hankyung.com


영국 찰스 1세는 1640년 올리버 크롬웰이 주도한 청교도 혁명으로 사형당했다. 크롬웰이 사망하자 공화정은 무너졌고, 프랑스로 추방됐던 찰스 2세가 왕위에 올랐다. 찰스 2세는 아버지 찰스1세에게 사형선고를 내린 재판관 등 58명 명단을 만들었다. 이 가운데 13명을 처형하고 25명을 종신형에 처하는 등 복수를 했다. 명단을 적은 종이에 죽음을 뜻하는 검은색 커버를 씌웠다고 해서 ‘블랙리스트’로 불렸다.

‘감시가 필요한 위험한 인물들을 적어놓은 목록’을 뜻하는 블랙리스트의 어원은 이렇게 ‘살생부’에서 시작됐다. 주로 정적들을 제거하거나 보복하기 위해 사용되던 블랙리스트는 다양한 분야에 등장했다. 19세기 미국에선 파업한 노동자들의 이름을 적은 명단을 블랙리스트라고 했다. 반대로 노동조합도 조합에 대한 부당노동행위가 두드러진 기업 이름을 명부로 작성해 블랙리스트라고 지칭했다.

1947년엔 ‘할리우드 블랙리스트’가 등장했다. 미국 의회의 ‘반미활동조사위원회’는 영화계 종사자 중 공산주의자로 의심을 받는 감독 작가 배우 등의 명단을 작성했다. 1950년엔 151명의 연예계 종사자 이름이 담긴 ‘붉은 채널’이란 이름의 블랙리스트가 만들어졌다.

당시 로널드 레이건 배우조합협회 회장은 “영화산업에서 공산주의의 위협이 심각한 수준”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블랙리스트에 오른 인사 중 일부는 소련 붕괴 뒤 실제 스파이 활동을 벌인 것으로 드러났다. 블랙리스트는 상업적인 스팸을 보내는 인터넷 정보 제공자(ISP)의 주소 목록을 뜻하기도 한다. 군사적으로는 수출입 금지 품목이 적혀 있는 명부를 의미한다.

화이트리스트는 블랙리스트와 반대되는 개념이다. 살려야 하거나 배려 또는 지원이 필요한 인물, 허용되는 일 등을 일컫는다. 독일 나치 시절 유대인들을 살리기 위해 만든 이른바 ‘쉰들러 리스트’도 화이트리스트라고 할 수 있다.

블랙리스트, 화이트리스트로 나라가 시끄럽다. 검찰은 이명박 정부 시절의 ‘문화예술·방송계 블랙리스트’ 작성 의혹에 대해 수사에 착수했다. 또 박근혜 정부 당시 청와대가 정권에 우호적인 보수단체를 선별적으로 지원했다는 이른바 화이트리스트 의혹과 관련, 보수단체 10여 곳을 압수수색했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 1심 재판에서 일부 무죄를 선고 받은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이번엔 화이트리스트 사건과 관련해 출국 금지당했다.

이에 맞서 자유한국당은 국정감사에서 현 여권의 적폐를 집중 공격하기 위한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한다는 소식이다. 북한 핵·미사일 도발로 인한 일촉즉발의 안보위기 상황에서 ‘과거’가 정치의 핵심이 된 것 자체가 안타까울 뿐이다.

홍영식 논설위원 ysho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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