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태의 논점과 관점] '헬조선'의 해외여행 러시

입력 2017-09-26 18:30  

김선태 논설위원 kst@hankyung.com


10월 초 추석 연휴기간 해외로 여행을 떠나는 출국자 수가 최대 130만 명에 달할 것이라고 한다. 명절 기준 역대 최고치다. 정부가 내수를 살려보겠다고 10월2일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했지만 이게 오히려 해외여행객들에게 날개를 달아준 셈이 됐다. 130만 명은 우리나라 인구의 2.6%에 해당한다. 다른 나라와 직접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10여 일의 단기간 동안 이만한 비율로 국민들이 해외로 여행을 가는 나라는 아마도 한국이 유일하지 않을까 싶다.

미국·일본 보다 해외여행 많이 다녀

이번 추석 연휴가 아니더라도 한국인의 해외여행 사랑은 유별나다. 지난해 출국자 수는 2238만 명이었다. 중복 출국자도 포함돼 있기는 하지만 대략 국민 두 명 중 한 명, 좀 더 정확하게는 2.2~2.3명 중 한 명은 해외를 다녀온 셈이다.

물론 전 세계를 통틀어 해외여행객 숫자가 가장 많은 나라는 중국이다. 지난해 1억2200만 명이 해외로 나갔다. 하지만 인구 대비 해외여행객 비율로 따지면 얘기가 달라진다. 중국 인구(13억8000만 명)를 감안하면 10명 중 한 명이 채 안 된다.

인구 대비 해외여행객 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는 폴란드다. 2014년 5400만 명이 해외로 나가 인구(3800만 명) 1인당 평균 1.4회 이상 출국했다. 영국과 캐나다는 연간 해외여행객 숫자가 인구 수와 엇비슷하다. 전 국민이 연간 한 번 정도 해외여행을 즐기는 셈이다. 이들 세 나라를 제외하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한국만큼 해외여행을 자주 가는 나라는 없다. 미국은 4.8명, 일본은 7.5명, 독일은 10명 당 한 명꼴로 해외를 찾는다.

한국인이 유독 해외여행을 즐기는 데는 몇몇 이유가 있을 것이다. 가족여행 또는 재충전과 휴식을 위한 여행도 있고, 요즘 유행하는 나홀로 여행도 늘어나는 추세다. 가까운 몇몇 여행지는 국내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이국적 풍광을 즐길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한국인 특유의 ‘남 따라 하기’도 해외여행 붐에 한몫하는 것으로 보인다. 인터넷,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에 경쟁적으로 올라오는 지인들의 멋진 해외여행 사진은 ‘욜로(YOLO·인생은 한 번뿐)’를 외치는 사회 분위기와 묘하게 오버랩된다. 다소 무리를 해서라도 “나도 한 번 다녀오자”식 충동을 부추기기도 한다.

이유가 무엇이든 해외여행엔 적잖은 돈이 든다. 아무리 저비용항공이라도 수십만원대는 보통이다. 여기에 숙박비와 식비 그리고 기타 비용을 합하면 만만치 않은 비용이 들게 마련이다. 신용카드 해외 사용액이 거의 매분기마다 계속 사상 최대치를 경신하고 있는 게 이를 잘 말해준다.

한편에선 이런 세태를 탓하기도 하지만 어쨌든 돈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재밌는 건 요즘 젊은이들 중엔 취직이 안 돼 머리를 식히러 해외여행 간다는 이들도 있다는 사실이다. 아르바이트로 돈을 모아 유럽 여행을 간다는 친구들도 보인다.

우린 정말 그렇게 불행한가?

미국 국내선 비행기를 타보면 “비행기 여행은 생전 처음”이라며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백발 성성한 노인을 만나는 게 어렵지 않다고 한다. 물론 해외여행이 부(富)와 행복의 척도는 아니다. 하지만 한국처럼 이를 즐길 수 있는 나라는 많지 않다.

그럼에도 ‘헬조선’ 운운하며 스스로를 폄훼하고 나라 밖 어딘가에 천국이라도 있는 듯 선동하는 이들이 넘쳐난다. “배고픈 게 문제가 아니라 배 아픈 게 문제”라며 불평불만을 부추기는 정치인도 있다. 우리는 정말 그렇게 불행한가. 긴 연휴 동안 한 번쯤 곰곰이 생각해볼 일이다.

김선태 논설위원 ks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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