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화에 힘입어 눈부신 고속성장을 거듭하던 1980년대 초반, 지금과 달리 대학을 졸업하면 취업 걱정이 크게 없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필자는 취업을 택하지 않고 땅 끝 마을 전남 해남으로 내려갔다. 모두가 떠나려던 농촌으로 홀로 내려가 농업인을 교육하고 잘사는 농촌을 만들겠다며 25년 외길을 걸었다. 비닐하우스 안에 벽돌집을 짓고, 5년5개월 동안 농민들과 동고동락하며 농가들을 하나로 묶어냈다. 정부가 부적합 판정을 내린 키위산업을 밑바닥부터 일궈냈고 패배의식과 타성에 젖은 농촌에 희망의 씨앗을 심고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초대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에 임명됐고, 지금까지 한국 농촌경제를 살리기 위해 밤낮없이 뛰어왔다. 그러나 장관 퇴임 후 강산이 변한다는 10여 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농촌의 어려운 현실은 변한 게 없다. 농촌만 생각하면 긴 한숨이 절로 나올 정도로 농업은 필자의 삶이고 전부며 끊임없이 고민을 안겨주는 존재다. 그래서 장관 시절 못한 정책과 국회의원이 된 지금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등을 항상 고민하는 습관이 생겼다.
그러던 어느 날 필자가 소속돼 있는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에서 신재생에너지와 관련한 정부 업무보고를 받는 중에 뭔가가 번쩍 스쳐 지나갔다. 바로 태양광발전소다. 무릇 유일하게 태양과 동업하는 것이 농업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태양과 평생 협업해온 농민들이 태양광발전소를 하지 못할 이유가 전혀 없다고 생각했다. 농지를 훼손하지 않고 영농과 태양광발전소를 동시에 진행해 생산된 전기를 판매하면 어려운 농가에 새로운 소득원을 만들어줄 수 있겠다고 본 것이다.
이후 산자위 회의나 국정감사,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질의, 대정부 질문 등 발언 기회가 있을 때마다 집요하게 ‘농민주도형 태양광발전소’를 외쳐왔다. 그리고 드디어 지난해 말 정부는 ‘2020년까지 농촌 태양광발전소 1만 호 보급’을 공식 발표했다. 필자가 끈질기게 제안한 농가발전소가 정부의 공식정책으로 탄생하게 됐다. 당장은 1만 호를 목표로 하고 있지만 정부가 힘있게 추진하는 만큼 필자는 앞으로 50만 농가 보급으로 확대하기 위해 사력을 다할 것이다.
태양빛은 정직한 에너지다. 태양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빛을 골고루 나눠주고, 우리는 정성을 다한 만큼 보상을 얻을 수 있다. 밝은 태양빛이 우리 농가와 신재생에너지 확대라는 희망의 빛으로 바뀌는 날이 머지않았다.
정운천 < 바른정당 최고위원 gbs2008@hanmail.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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