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심성미 기자 ] “이 작가는 언제나 ‘바깥’이 아니라 ‘안’에서 쓴다.”
신형철 문학평론가가 2012년 등단한 신예 작가 김혜진(사진)의 작품을 두고 한 말이다. 그의 새 장편소설 《딸에 대하여》(민음사)도 마찬가지다. 엄마의 독백으로 내내 이어지는 이 소설은 내부자의 시선으로 사회에 만연한 혐오의 폭력에 노출돼 있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이 책이 정면으로 마주하고 있는 건 성소수자에게 작동하는 우리 사회의 폭력 메커니즘이다. 대학 강사인 딸의 동성애자 동료는 수업에서 성소수자 관련 영화를 보여줬다는 이유로 부당하게 해고된다. 딸의 다른 동료는 길에서 해고 반대를 외치다 하반신이 마비된다. 페미니즘 교육을 했다는 이유로 해당 교사의 파면을 요구하는 집회가 연일 열리는 한국 사회의 현실과 맞닿은 이야기이기에 더욱 현실감 있게 다가온다.
동성애자인 딸을 지켜보는 엄마의 독백은 지극히 현실적이면서도 솔직하다. “너희가 가족이 될 수 있어? 너희가 혼인 신고를 할 수 있어? 자식을 낳을 수 있어?” 엄마는 30세가 넘어서까지 돈벌이는커녕 결혼할 생각도 없는 딸을 ‘세상과 불협하는 법에만 익숙한 비정상’으로 규정한다. 엄마의 독백은 ‘보통, 혹은 평균과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소수자가 매일 들어야만 하는 목소리이기도 하다.
작가가 이 소설에서 보여주고자 하는 또 다른 이야기는 ‘늙고 병든 여성의 삶’이다. 경제력과 가족이 없는 늙은 여성이 한국 사회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맨 밑바닥이다. 엄마가 요양원에서 돌보는 노인 ‘젠’은 이민자 자녀를 위한 교육기관을 설립하는 등 “젊은 날의 그 귀한 힘과 정성, 마음과 시간”을 소외된 자들을 돌보는 데 썼다. 그러나 가족 없는 치매 노인이어서 정당한 대우를 받기는커녕 값싼 요양원으로 쫓겨난다. 기댈 이가 없어 요양보호사인 엄마에게 전적으로 의지하는 젠의 모습은 20년 후 엄마의 모습으로, 40년 후 딸의 모습으로 쉽게 치환된다.
소설의 처음부터 끝까지, 엄마는 타인을 이해하려는 의지와 이해의 한계 사이에서 힘겹게 줄다리기한다. 독백에는 이해하고 싶어도 이해하지 못하는 두려움과 배신감, 상실감이 뒤엉켜 있다. 그러나 소설 말미에는 엄마의 내면에서 딸이 세상으로부터 존중받기를 바라는 마음이 조심스레 싹튼다. “공부도 많이 하고 아는 것도 많은 애가 일터에서 쫓겨나 돈 앞에 쩔쩔매다 가난 속에 처박혀 늙어서까지 나처럼 이런 고된 육체노동 속에 내던져질까 봐 두려워요.(…) 난 이 애들을 이해해 달라고 사정하는 게 아니에요. 다만 이 애들이 잘할 수 있는 일을 하도록 내버려 두고 그만한 대우를 해주는 것. 내가 바라는 건 그게 전부예요.”
타인을 이해하는 것의 한계와 그 일말의 가능성이 서로 갈등하며 또 다른 가능성을 보여주는 셈이다. 이 소설이 성소수자에 관한 이야기일 뿐 아니라 타인을 이해하는 방식에 대한 이야기로도 읽히는 이유다.
심성미 기자 smsh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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