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희경 기자 ]
“사랑을 했는데요 얼마 전에. 마누라 말고. 자주 보고 아침마다 같이 눈도 뜨고 그랬는데, 계속 보고 싶어요. 그래서 요즘 잘 지내고 있습니다. 우리 딸내미하고요.”
고(故) 김광석이 1993년 7월 공연에서 한 말이다. 딸 서연양이 태어난 후 일상이 주는 벅찬 감동을 관객들에게 떨리는 목소리로 전했다. 절절한 마음은 그가 세상을 떠나고 나서도 각종 추모공연이나 전시회를 통해 자주 회자되곤 했다. 그런데 2017년 9월 사람들에게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졌다. 서연양이 급성폐렴으로 10년 전인 2007년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었다. 김광석과 서연양의 죽음에 석연치 않은 부분이 많다는 의혹 제기와 함께.
‘영원한 가객(歌客)’ 김광석이 세상을 떠난 지 21년, 서연양의 사망 이후 10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베일을 벗기 시작한 비극적인 이야기에 대중들은 진실을 밝히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수사도 시작됐다. 이런 상황을 촉발한 것은 오랜 기간 이 사건을 추적한 영화 ‘김광석’이었다.
특정 주제와 인물을 취재한 후 영화를 통해 문제를 제기하는 ‘무비 저널리즘’이 전성시대를 맞았다. 국내 무비 저널리즘은 2011년 ‘도가니’의 흥행에서 시작됐다고 영화계는 보고 있다. 하지만 일시적인 관심에 그쳤다. ‘극장에서 상영되는 다큐멘터리’ 취급을 받는 정도였다. 그런데 이번엔 분위기가 다르다. 이상호 기자의 영화 ‘김광석’과 최승호 전 MBC PD의 영화 ‘공범자들’은 꾸준히 관객을 모으고 있다. 또 과거의 사건들을 현재의 주요 이슈로 부각시키는 역할까지 하고 있다.
무비 저널리즘은 영화의 지평을 허구에서 실화로 넓히는 역할도 한다. 그동안 관객들은 ‘알레고리(allegory)’화된 허구의 영화에 익숙했다. 알레고리는 작품이 하나의 은유법을 담고 있는 것을 이른다. 영화에선 조선 시대 왕을 그린 작품을 통해 그와 비슷한 현시대의 리더의 모습을 떠올리도록 하는 식이다. 관객들은 이를 보며 감정 이입을 하고 때론 카타르시스도 느꼈다. 하지만 극장을 나서면 그것으로 끝이었다.
반면 이야기에 현실성까지 담은 최근 무비 저널리즘 작품들엔 다른 반응을 보인다. 영화를 본 뒤에도 온라인에서 이슈를 재확산시키며 진실 규명을 촉구한다.
일부에선 작품들의 증거나 완성도가 다소 부족하다는 문제 제기도 나온다. 그런데도 무비 저널리즘이 화제가 되는 것은 결과보다 작품이 주는 과정과 의미에 관객들이 감정 이입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탄생 때부터 그랬다.
무비 저널리즘은 1989년 미국 마이클 무어 감독이 만든 데뷔작 ‘로저와 나’로 시작됐다. 그는 제너럴모터스(GM)의 로저 스미스 전 회장에게 질문을 던지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과정을 카메라에 담았다. 미시간주에서 갑자기 3600여 명의 실직자가 나오게 된 이유를 묻기 위한 것이었다. 이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가까스로 성사된 만남에서 듣게 된 답변도 형식적이었다. 플롯 등 영화의 완결성도 떨어졌지만 관객들의 머릿속에 남은 건 그게 아니었다. 공허한 시민들의 표정, 활기 잃은 도시의 모습이었다.
그의 후예들은 세계 곳곳에서 기하급수적으로 양산되고 있다. 스마트폰의 등장은 무비 저널리즘 확산의 물적 기반을 제공했다. 이젠 일반 시민들도 누구나 영상을 찍기 시작했다. 영화감독도, 기자나 PD도 아닌 한 시민이 문제의식을 갖고 치열하게 찍은 영화가 스크린에 상영될 날이 다가올지 모를 일이다.
김광석의 노래 ‘잊혀지는 것’엔 이런 가사가 나온다. “그리움으로 잊혀지지 않던 모습. 이제는 기억 속에 사라져가고. 사랑의 아픔도 시간 속에 잊혀져. 긴 침묵으로 잠들어가지.” 이 노랫말처럼 시간이 흐르면 그리움도 아픔도, 때론 비극의 진실도 잠들어간다. 그러나 이를 깨우기 위한 누군가의 노력과 대중들의 관심이 있는 한 영원한 침묵은 없다.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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