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 잘 걷혔는데…조달청 불용액 비율 28.6% '최고'
과기부·산업부·통일부·기재부도 불용액 비율 두 자릿수 넘어
행안부·금융위 등은 1% 미만
예산편성·집행 주먹구구 여전…"되풀이 부처엔 페널티 줘야"
[ 이상열/이정호/이미아 기자 ] 중앙 부처가 예산을 배정받고서도 집행하지 않아 발생한 ‘불용 예산’이 지난해 15조원을 넘은 것으로 나타났다. 조달청, 과학기술정보통신부(옛 미래창조과학부), 산업통상자원부 등의 예산 불용률이 상대적으로 높았다. 과거엔 경기 부진 탓에 세입에 펑크가 나 사용처를 정해놓고도 돈을 집행하지 못해 발생하는 불용 예산이 많았다. 하지만 지난해엔 세금이 잘 걷혔는데도 대규모 불용 예산이 생겼다. 그만큼 부처들이 예산 편성을 주먹구구로 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5개 부처 불용액 비율 두 자릿수
2일 기획재정부가 박명재 자유한국당 의원에게 제출한 ‘2016년 부처별 예산 집행액과 불용액’ 자료를 보면 지난해 중앙정부에 배정된 예산은 348조원이었지만 이 중 95.5%인 332조2000억원만 집행됐다. 나머지 4.5%인 15조8000억원은 예산 집행이 이뤄지지 않은 ‘불용액’이었다.
부처별로는 조달청, 과기정통부, 산업부, 통일부, 기재부 등의 전체 배정예산 대비 불용액 비중이 두 자릿수를 넘은 것으로 드러났다. 조달청은 지난해 3493억원의 예산을 배정받았지만 997억원을 사용하지 못했다. 불용액 비중이 28.6%로, 54개 중앙정부 부처(위원회 포함) 중 가장 높았다.
과기정통부는 15조5439억원의 배정 예산 중 13.0%에 해당하는 2조169억원이 불용 예산이 됐다. 산업부는 12.1%(9조3882억원 중 1조1344억원), 통일부는 11.2%(4563억원 중 511억원)의 예산을 쓰지 못했다. 재정당국인 기재부도 25조3800억원 중 11.0%에 해당하는 2조7961억원을 쓰지 못했다.
반면 행정안전부는 38조7431억원의 배정 예산 중 38조7196억원을 집행해 불용액 비율이 0.06%로 가장 낮았다. 금융위원회, 국가보훈처, 교육부, 법무부 등도 불용액 비율이 1% 미만이었다.
“주먹구구 예산 편성의 결과”
불용액이 발생한 이유는 제각각이다. 과기정통부, 통일부 등은 미래 경제 상황을 잘못 예측하고 세출 예산을 지나치게 크게 잡은 탓에 불용액이 생겼다. 과기정통부는 “우정사업본부가 세출 예산으로 편성한 지급이자 집행이 금리 인하로 줄어들어 여기서만 1조3000억원의 불용 예산이 발생했다”며 “부처 내부 기금 간 거래도 줄어 수천억원의 불용 예산이 생겼다”고 했다.
통일부도 “남북관계 경색 등으로 남북협력기금 출연금이 예산보다 300억원 적게 집행됐고 탈북자 축소에 따른 탈북민 정착 관련 예산 등에서 불용이 발생했다”고 밝혔다. 기재부는 “홍수 등 재해대책용 예비비를 3조원 정도 편성했는데 지난해 별다른 자연재해가 없어 대부분 불용됐다”고 했다.
세입을 과도하게 장밋빛으로 잡은 게 원인이 된 부처도 있다. 조달청은 “다른 부처로부터 받은 조달 대행 수수료 수입이 예상보다 200억원 이상 적었던 데다 작년 팔려고 했던 300억원대 토지 매각이 지연되면서 세입 부문에서 큰 차질이 발생한 것이 불용 예산의 가장 큰 원인이 됐다”고 설명했다.
산업부도 “지난해 유가 하락과 유가 수요 부족으로 에너지특별회계기금 수입이 1조원가량 줄어들면서 세출에서도 같은 규모의 불용이 발생했다”고 밝혔다.
박 의원은 “부처들이 세입 예산을 과도하게 부풀리거나 일단 받아놓고 보자는 식으로 세출 예산을 신청해 불용 예산 발생이 되풀이되고 있다”며 “대규모 불용 예산이 되풀이되는 부처는 예산 삭감 등 페널티를 부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상열/이정호/이미아 기자 mustaf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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