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업계에선 올해가 임대차시장 개혁의 원년이 될 것이란 평가가 나오고 있다. 민간임대주택 활성화와 관련 제도 정비에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어서다. 당장 추석 연휴가 끝난 뒤엔 ‘주거복지 로드맵’이 발표될 예정이다. 주거복지 로드맵은 앞으로 5년 동안의 서민 주거안정화 방안에 대해 정부가 제시하는 청사진이다.
하지만 임대시장이 전세 중심에서 월세 중심으로 바뀌고 있는 만큼 정책적 변화 역시 필요하다는 주문이 나온다. 언제나 ‘대란’ 상태인 전세의 수급 안정에 집착해 시장 구조변화에 역행하기보다는 서민의 월세 부담을 덜어줄 수 있는 데 재원을 써야 한다는 지적이다.
송인호 한국개발연구원(KDI) 공공투자정책실장은 최근 ‘월세비중 확대에 대응한 주택임대정책 방향’ 보고서를 통해 “목돈마련 부담과 신용제약이 큰 청년층과 고령층을 중심으로 전세비중은 축소되고 월세비중이 확대되고 있다”며 “이들의 주거 선택 폭이 넓어지도록 다양한 보증부월세시장이 형성될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송 실장은 우선 “양질의 주거서비스를 갖춘 주택이 전세에서 월세로 원활히 전환될 수 있도록 임대소득과세 등 전·월세 간 규제의 균형을 이루는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현행 임대소득과세는 월세의 경우 2주택자부터 적용되지만 전세는 3주택자부터 적용돼 아파트 등 양질의 주택이 전세 위주로 공급되는 요인으로 꼽힌다.
일부 임대정책 재원이 소득 구분 없이 일반 가구에 대해서도 지원되고 있어 고령층 등 주거지원이 필요한 이들이 사각지대 방치된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송 연구위원은 “수도권 일반가구도 전세대출 명목으로 3억원을 연 2.3~2.9%의 저리로 대출받을 수 있다”며 “전세대출 보증한도를 포함한 임대정책 재원은 정책의 우선순위를 적용해 저소득·고령층을 중심으로 한 주거취약계층에 우선적으로 분배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전세 세입자를 직접 지원하는 대책보다는 월세전환을 유도하되 서민층 주거비 부담을 경감시킬 수 있는 정책이 임대시장의 구조변화와 맞아떨어진다는 의미다. 국토교통부의 주거실태조사에 따르면 임대시장 월세비중은 2014년 55%를 기록해 처음으로 전세(45%)를 넘어선 데 이어 가장 최근인 2016년 조사에선 60.5%까지 확대됐다. 꾸준히 예고된 ‘전세의 종말’이 진행되고 있는 셈이다.
전세는 임대차제도인 동시에 사금융의 성격을 지닌다. 임대인은 월세수익을 포기하는 대신 전세자금을 운용해 수익을 얻을 수 있다. 저금리 기조가 이어지거나 집값 상승에 대한 기대가 꺾여 주택구매의 레버리지 효과가 감소되면 공급은 월세로 전환된다. 반면 임차인 입장에선 계약만료 시점에 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있는 전세가 월세보다 저렴한 임대차제도로 선호된다. 공급은 줄어드는데 수요는 여전히 많은 데다 전세대출 등 금융지원까지 더해지다 보니 전세가격이 더욱 급등하는 ‘미친 전세’는 필연적이다.
전세보증금 마련을 위한 대출은 가계부채의 뇌관으로도 지적된다. 고제헌 한국주택금융공사 연구위원은 전세대출이 2015년 기준 41조원을 기록했지만 실제 가계는 신용대출 등을 통해서도 보증금을 마련한다는 점에서 임대보증금 마련을 위한 대출총액은 이보다 2배가량 많은 81조7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했다. 2010년과 비교하면 약 45조원이 늘어난 것으로, 임대보증금 반환 목적의 대출(15조1000억원)까지 포함하면 증가 규모는 60조5000억원으로 불어난다. 이는 같은 기간 동안 증가한 가계대출 총액(약 344조원)의 17.4%에 해당한다.
고 연구위원은 “임대보증금을 마련하기 위한 대출이 최근 몇 년간의 가계부채 증가에 상당부분 기여했음을 함의한다”고 분석했다. 국제통화기금(IMF) 역시 지난해 “한국 특유의 임대차 방식인 전세가 가계부채 증가의 원인”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문제는 월세가 보편화될 경우 세입자의 주거비부담이 전세보다 커진다는 점이다. 월세 임차인의 주거비부담은 월소득의 32.1%로 전세(22.0%)보다 10%p가량 높다. 월급으로 150만원을 받는다면 48만1000원을 월세 등 주거비로 쓰는 셈이다. 특히 30세 미만 청년층과 60세 이상 고령층의 월세 거주 비중은 각각 79%와 63%로 확대되는 중이다.
전문가들은 향후 임대차시장 정책은 이들의 주거비 부담을 낮추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고 분석한다. 월세가 중장기적인 시장의 흐름인 만큼 정부가 이를 파악하고 있다면 월세 안정화 방안 등 월세 중심의 임대차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도입이 검토되고 있는 전월세상한제는 사실상 전세상한제나 다름없는 제도다. 지난 정부에선 월세소득공제를 꺼내들었지만 결과는 모두가 아는 대로다.
전형진 한경닷컴 기자 withmold@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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