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후보→남북 경협→가상화폐… '연중무휴' 테마주에 다 털린다

입력 2017-10-09 17:04  

개인투자자 홀리는 테마주

'대박' 노리다가…
평균 PER 200배 넘어도 개인들 '묻지마 투자'
남북 경제협력 테마주, 주가 2배 치솟다 20% 손실

진화하는 작전세력…10명 안팎으로 팀 구성
스토리 작가 동원해 '타깃 업체' 테마 만들고
IT전문가가 정보 퍼 날라



[ 김우섭 기자 ] 스마트폰 부품 생산업체인 코스닥 상장사 현우산업 주가는 지난 1월 초 3000원 안팎에서 움직이다가 한 달여 뒤인 2월6일 4700원까지 올랐다. 이 회사 문병선 대표가 남평 문씨 문중 행사에서 당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를 만나 사진을 찍었다는 소문 때문이었다. 문 후보가 전남 나주의 문씨 서원에서 절하고 있는 사진이 소문과 함께 인터넷 등을 통해 유포되면서 개인투자자(개미)들의 자금이 몰렸다.

금융감독원 조사 결과 이 소문은 전업 주식투자자 A씨가 꾸며낸 거짓말이었다. 대통령선거가 임박하자 이 회사 주가는 연초 수준인 3000원대 초반으로 떨어졌다. A씨는 현우산업 주식을 고점에 팔아 2500만원의 차익을 냈다.


뜨거워진 가상화폐 테마주

테마주는 해당 종목이 특정 이벤트나 유력인사와 깊은 연관이 있다는 식으로 그럴싸하게 포장돼 탄생한다. 테마가 사라질 때까지 주가가 급등락하는 롤러코스터 궤적을 그린다. 최근엔 정보 유통 속도가 빨라지고, 작전세력이 조직화되면서 1년 내내 다양한 테마주가 기승을 부린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올 들어선 1~3개월을 주기로 주요 테마주가 바뀌었다. 1분기엔 19대 대통령선거와 관련한 대선 후보 테마주, 4~5월엔 남북 경제협력 관련 정책 테마주에 개미들이 달려들었다. 하반기 들어 떠오른 분야는 가상화폐 테마주다.

가상화폐 테마에 속한 종목 중 실제로 관련 사업을 하는 곳은 없다. 주로 관련 기업에 5% 이내 지분을 투자한 회사다. 가상화폐 거래소 설립을 추진 중인 두나무 지분을 보유한 우리기술투자와 에이티넘인베스트, 코인플러스 주주인 SBI인베스트먼트 등이 대표적이다. 국내 1위 가상화폐 거래소 빗썸에 투자한 비덴트도 주가가 뛰었다. 이들 4개 종목의 연초 이후 지난달 28일까지 상승률은 평균 100.9%에 달한다. 우리기술투자와 에이티넘인베스트, 비덴트는 주가가 급등해 각각 투자주의 및 투자환기 종목으로 지정돼 있다.

전문가들은 실적이 뒷받침되지 않은 테마주에 투자하는 건 위험하다고 입을 모은다. 가상화폐 테마주인 우리기술투자, 에이티넘인베스트, SBI인베스트먼트의 평균 주가수익비율(PER·주가/주당순이익)은 263배나 된다. 이들 종목이 상장된 코스닥시장 평균 PER 14.5배보다 훨씬 높다. 그만큼 주가가 고평가됐다는 의미다. 모두 매출이나 영업이익이 작년과 비슷하거나 감소한 기업이다. 전경대 맥쿼리투신운용 액티브운용 팀장은 “고평가된 테마주는 반드시 제자리를 찾아간다”고 강조했다.

인디에프, 신원, 좋은사람들, 재영솔루텍 등 남북 경제협력 테마주들은 문재인 대통령 당선 직후 연초보다 두 배 이상 치솟았지만 지금은 평균 20% 넘는 손실을 내고 있다.

교묘해지는 작전 수법

개미들이 테마주 투자를 통한 ‘일확천금의 꿈’을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는 이들의 투자심리를 자극하는 작전 세력의 치밀한 시세조종이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과거엔 테마주를 띄우는 세력이 친분있는 사람끼리 소문을 내고, 주식을 사고파는 단순한 형태에 머물렀다. 하지만 최근엔 10명 안팎으로 팀을 구성해 전문적으로 움직인다는 게 금융감독 당국의 설명이다.

요즘 작전세력은 △‘타깃’이 된 기업에 관한 스토리를 만드는 작가 △정보를 고속, 대량으로 유통하는 정보기술(IT) 전문가 △매수·매도 주문 전문인력 등으로 구성된다. 금융감독당국 관계자는 “같은 작전세력이라도 팀별로 각각 다른 사무실에서 일하는 데다 메신저도 추적이 불가능한 ‘텔레그램’을 사용한다”고 말했다.

테마를 생성하는 방식도 진화하고 있다. 포털사이트의 증권 관련 게시판에 글을 올리는 데 그치지 않고 그럴듯한 논리로 포장한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작성해 카카오톡 등 메신저에 유포하기도 한다.

작전세력이 깔아놓은 판에 개미들이 뛰어드는 건 비교적 늦은 시점이다. 테마주는 통상 ‘소문 유포→급등→과열→급락’의 과정을 거친다. “개미들은 이 중 급등과 과열 국면에서 투자에 나서는 게 보통”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테마주에 ‘묻지마 투자’를 하는 개미들이 대부분 손실을 보는 이유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탄핵 정국 직전이던 지난해 9~11월 가장 큰 폭으로 오른 정치 테마주 16개 종목에 투자한 개인투자자(투자금 500만원 이상)의 92%가 손실을 본 것으로 나타났다.

김우섭 기자 dut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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