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고리 5·6호기 기술, 유럽 인증 통과

입력 2017-10-09 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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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선 건설 중단 위기 몰리며 '찬밥' 신세인데…
'EU-APR' 표준설계 안전성 본심사 문턱 넘어
미국 인증도 사실상 통과

탈원전 정책 강행 땐 협력사 업종전환 불가피
수출 경쟁력 상실 우려



[ 이태훈 기자 ] 한국형 원자력 발전소의 유럽 수출 길이 열렸다. 한국형 원자로 ‘APR1400’을 유럽 안전기준에 맞춰 설계한 ‘EU-APR’이 유럽사업자요건(EUR) 인증 심사를 통과했기 때문이다. APR1400은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 설계 인증 심사도 사실상 통과했다. APR1400은 공론화로 건설 여부를 결정하기로 한 신고리 원전 5·6호기에 들어가는 원자로다. 한국이 10년간 2350억원을 들여 독자 개발했다. 하지만 정부의 탈(脫)원전 정책으로 국내 원전 건설이 중단되면 이 기술이 사장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해외에서 인정받은 기술력

한국수력원자력은 “APR1400의 유럽 수출 모델인 EU-APR이 EUR 인증 본심사를 통과했다”고 9일 발표했다. EUR 본심사 가운데 최단 기간인 24개월 만에 최종 인증을 받았다. EUR 인증은 유럽사업자협회가 유럽에 건설될 신형 원전의 안전성, 경제성 등 요건을 심사하는 것이다.

협회는 유럽 12개국 14개 원전 사업자로 구성돼 있다. 회원국들은 EUR 인증을 유럽권 건설사업의 표준 입찰요건으로 사용하고 있다. 유럽뿐 아니라 남아프리카공화국, 이집트 등도 원전사업자에 EUR 인증을 요구한다.

한국전력은 영국 북서부에 2025년까지 원전 3기를 짓는 ‘무어사이드 프로젝트’ 수주를 추진 중인데 이번 인증으로 수출에 유리한 고지를 선점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전과 한수원은 체코 스웨덴 폴란드 등에도 원전 수출을 타진하고 있다.

이에 앞서 APR1400은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 설계인증의 6단계 중 3단계를 통과했다. 내년 9월께 인증이 완료될 예정이다. NRC의 인증 심사는 세계 원전 규제기관 중 가장 까다롭다고 알려져 있다. 일본은 심사 1단계만 통과했고, 프랑스는 2007년 심사를 신청했다가 2015년 철회했다.

◆국내에선 ‘찬밥’

APR1400은 3세대 원전으로 분류된다. 1세대 원전은 1950~1960년대 개발됐다. 주로 실험용 원자로로 쓰였다. 1970~1990년대 지어진 2세대 원전이 본격적인 상업용 원전이다. 2000년 이후 안전 기준을 대폭 강화한 것이 3세대 원전이다. 노심이 녹아내리는 등 중대 사고가 발생할 확률이 2세대 원전은 1만분의 1이었지만 3세대 원전은 10만분의 1이다.

APR1400은 신고리 3·4호기에 처음 적용됐다. 신고리 3호기는 지난해 말 상업운전에 들어갔고 신고리 4호기는 내년 9월 준공 예정이다. 아랍에미리트(UAE)에 수출된 바라카 원전도 APR1400 모델이다.

신고리 5·6호기 역시 APR1400 모델로 건설될 예정이다. 신고리 5·6호기는 종합 공정률이 29%인 상태에서 건설이 일시 중단됐으며 오는 20일 나오는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의 권고안에 따라 건설 재개 여부가 결정된다.

정부는 “탈원전 정책을 추진해도 수출은 지원하겠다”고 하지만 이는 현실과 동떨어진 얘기라는 게 원전업계의 설명이다. 업계 관계자는 “신고리 5·6호기 건설에 참여한 기업은 협력업체까지 합쳐 1700개가 넘는다”며 “대부분 중소기업인데 국내에서 원전 건설이 이뤄지지 않으면 상당수가 도산하거나 업종을 전환해 기술력을 유지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태훈 기자 bej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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