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 인상분은 누가 지불하게 될까. 서슴없이 ‘사업주’라고 한다면 경제가 어떻게 연결돼 돌아가는지 더 공부해야 한다. 눈앞 현상만 보면 물론 사업주다. 최저임금 대상자인 저임금·비정규직 근로자 500만 명과 300만 소규모 사업자 간 대립, 이해충돌 문제로 비치는 것도 그래서다.
사업주·정부·근로자·소비자, 4주체
정부가 최저임금 지원으로 내년 예산에 반영한 3조원은 뭔가. 일거에 16.4% 인상에 따른 영세 사업자들 부담을 나랏돈으로 상당 부분 메꿔준다는 의미다. 임금 인상분을 정부가 직접 부담하는 게 된다. 사적 고용계약에 국가 지원은 당연히 한시적이어야 한다. 지원하더라도 한 해로 그쳐야 한다.
근로자들 스스로도 최저임금 인상분을 나눠 부담하는 주체다. 최저임금의 한계선상에 서 있는 노동계층이 더 실감나게 대가를 지불하게 된다. 청년백수나 재취업을 바라는 취업예비군들에게는 ‘일자리 기회 축소’라는 비용이 돌아갈 것이다. 무인 자동주유기로 바꿔 가겠다는 주유소업계나 경비원 대신 첨단 폐쇄회로TV를 도입하겠다는 보안업계를 보라. 햄버거 점포의 주문도 무인 접수는 시간문제다. 미국 같은 곳에서는 벌써 다가온 광경이다. 이 트렌드로 보면 급등한 최저임금 대가가 안타깝게도 저임금 근로계층에 집중될 수 있다. 미국 미주리주가 최저 시급을 10달러에서 7.7달러로 내리고 볼티모어 시장이 시급 인상안에 거부권을 행사한 배경이다.
종업원의 최저 인건비가 올라갈 때 식당 주인이 자기 몫을 줄이며 감내할까. 그럴 리가 없다. 짜장면, 김치찌개값이 줄줄이 오를 것이다. 물가 상승은 모든 소비자가 지불하는 최저임금 비용이다. 우리는 급상승하는 최저임금에 맞춰 음식값을 더 낼 용의가 있나. 네 번째 지불자인 국민은 최저임금발(發) 인플레이션을 끝까지 용인할까.
대기업은 임금수준이 높아 최저임금과 상관없는 무풍지대인가. 그렇게 봤다면 경제뿐 아니라 한국의 ‘정치’를 보는 안목을 더 키울 필요가 있다. 이미 시작된 일각의 협력사 납품가 올리기는 대기업도 예외가 아님을 보여준다. 우리 대기업들은 이런 데서 권력 동향을 살피는 데 고수다. 그렇지 않고서는 살아남기 힘든 세월을 보내왔다. LG전자가 400여 개 1차 협력업체를 대상으로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생산비용 증가 실태 전수조사에 나섰다. 삼성전자도 협력사의 비용상승 요인 조사에 들어갔다고 한다. 1차 협력업체는 그렇게 지원한다고 치자. 2, 3차 협력업체는 어떻게 하나. 국내 굴지의 대기업들 경영에도 무시 못할 변수가 됐다.
이런 전방위적 파장을 경제활동 참가자 모두가 알아야 한다. 청와대를 필두로 정부가 속도조절론을 언급하기 시작한 것도 뒤늦게 충격파를 파악했기 때문일지 모른다. 물론 비판의 소나기는 피하면서 일단 올해 목표치부터 달성해 놓고 보자는 ‘전략적 언급’일 수도 있다. 본심은 내년 선거 때 드러날 것이다. 내년 6월 지방선거는 최저임금 산정 시기와 겹친다. ‘2020년 1만원’ 공약의 앞길이 이때 판가름날 것이다. 진짜 걱정은 속도조절론이 양대 노총의 반대를 돌파해 낼지 여부다. 단순히 속도를 조절하는 데도 비싼 대가를 치러야 할지 모른다.
乙 대 乙 전쟁…경제·경영 문제로
최저임금 급상승으로 빚어진 충격과 혼돈은 ‘을(乙) 대 을의 전쟁’처럼 됐다. 500만 저소득 근로자도, 300만 소사업자도 약자다. 올리더라도 최저임금은 경제와 경영 문제로 풀어가야 한다. 정치 이슈가 되는 순간 경제는 쇠퇴의 길에 들어설 것이다. 생산성을 초과하는 임금 인상, 특히 단기 급상승이 20년 전 외환위기의 주요 원인이라는 지적을 잊어선 안 된다.
허원순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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