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달 전 ‘살충제 계란’ 파동으로 온 나라가 들썩였다. 계란을 먹어도 되는지, 아니면 그냥 버려야 하는지 혼란스러웠다. 당시 어떤 신문에 누가 기고한 글에서 인간의 문화적 성취를 3단계로 구분한 내용이 얼핏 생각난다. 1단계는 나무 필통, 종이 등 일반 사물, 2단계는 제도, 분권, 학교 등 시스템, 3단계는 문화, 창의, 예술 등이라는 것이다.
지난 70년 동안 대한민국은 기적 같은 폭풍 성장을 이뤘다. 배고픔은 해결된 듯하다. 1단계는 지난 셈이다. 그러나 살충제 계란 파동의 해결 과정을 보면서 우리가 3단계에 진입한 나라 같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스템의 부실함과 성급함, 철저하지 못한 성품 등 허술함이 이리도 쉽게 드러나는지.
그런데 누구도 우리를 머리 나쁜 미련한 민족으로 보지 않는다. 예술도 정말 잘한다. 우리 전통 공예만 봐도 대한민국 사람의 뛰어난 예술적 감성을 느낄 수 있다. 여기에는 어떤 과학적 수치가 필요치 않다.
우리 음악을 들은 일본 관객이 먼저 자기네 고토(:한국의 가야금과 비슷한 일본 현악기)와 한국 가야금의 감성적 깊이가 다름에 질문을 던졌을 때, 서양 현악사중주와의 협연에서 가야금 소리에 유럽 사람들의 눈동자가 커졌을 때, 긴 역사를 자랑하는 독일 유명 페스티벌에서 ‘왜 네 음악은 리듬이 그리 복잡하냐’는 기자의 질문을 받았을 때 등 우리 전통예술의 감성적 깊이에 대한 외국인의 폭발적 반응을 접할 수 있었다.
세계 전통 예술을 진지하게 소개하는 프랑스의 주요 공연에서 우리 음악이 큰 환호를 받았을 때, 외국인 대상 거문고 독주회에서 무려 여덟 번의 커튼콜을 받았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국제 국악 연수를 온 세계 작곡가들이 산조 음악 강의에서 질문을 쏟아낼 때, 시나위(즉흥성이 강조되는 합주 음악)의 예술성을 너무나 궁금해했을 때도 있었다.
그런데 정작 오늘날 대한민국 사람들이 전통 예술로 황홀해 한 경험은 선뜻 나열되지 않는다. 나의 고민은 바로 이 지점에 있다. 아직 3단계까지 가지 못한 채, 살충제 계란 파동 같은 어쭙잖은 단계에서 헤매고 있는 게 현재 우리의 위상이다.
우리에게는 분명 급성장의 후통(後痛)을 견뎌 낼 시간이 필요할 테다. 그렇다고 조급증이나 남의 다리 긁어서 내 일을 해결할 것은 더욱 아닌 것 같다. 내 안의 철저함과 깨어 있음으로, 그리고 우리 예술의 깊은 감성과 창의성을 무기로 우리가 우리에게 먼저 감동을 줄 수 있는 그런 해법은 없는 것인지? 내 손안의 보물을 쥐고만 있다가 산화되기 전에 말이다.
김해숙 < 국립국악원장 hskim12@korea.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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