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인도네시아 공사 멈춰
미국·멕시코선 첫 삽 못뜨고 취소
중국 지도부 세일즈맨 자처
저가 앞세워 1430억달러 수주
실패땐 '일대일로' 구상도 위기
[ 베이징=강동균 기자 ] 중국이 ‘일대일로(一帶一路: 육·해상 실크로드)’ 프로젝트의 기반 사업으로 해외에서 공격적으로 추진해 온 고속철도 건설사업에 잇따라 제동이 걸리고 있다. 현지 정부와의 갈등으로 계약 자체가 무산되거나 건설 비용과 인력 채용, 환경 문제 등을 둘러싼 논란으로 공사가 중단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중국의 ‘고속철 굴기’가 위기에 처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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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곳곳서 난관 봉착한 中 고속철 굴기
태국 수도 방콕과 동북부 나콘라차시마를 연결하는 250㎞의 고속철 건설사업은 첫 삽을 뜨기도 전에 가로막혔다. 환경영향평가를 둘러싸고 태국 정부와 중국 측이 마찰을 빚어 최근 공사가 또다시 연기됐다.
중국은 2014년부터 이 사업을 추진해 이듬해 기공식을 열었다. 하지만 기술 이전과 자금 조달, 개발 지분, 인력 채용 절차 등을 놓고 갈등이 생겨 착공이 지연됐다. 우여곡절 끝에 지난 7월 태국 정부가 최종적으로 사업을 승인했지만 환경 문제가 불거지면서 계약이 파기될 가능성도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중국이 일본을 따돌리고 동남아시아에서 처음으로 수주한 인도네시아 고속철사업도 난관에 부딪혔다. 수도 자카르타와 제3도시 반둥을 잇는 이 사업은 작년 초 착공식을 하고 본격적인 공사에 들어갔지만 현지의 복잡한 토지 수용 절차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고속철이 통과할 산악 지역에 추가로 터널 공사를 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되면서 사업비가 52억달러(약 5조9200억원)에서 60억달러로 늘게 됐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자국 국영기업이 갖고 있는 이 사업의 지분 60% 중 50%를 중국 측이 가져갈 것을 요구하고 있다.
미국에서 추진한 고속철은 사업 자체가 무산됐다. 중국철로국제공사는 2015년 미국 엑스프레스웨스트와 컨소시엄을 구성해 로스앤젤레스와 라스베이거스를 연결하는 고속철을 건설하기로 합의했지만 지난해 6월 미국 측이 계약을 전격 취소했다. 엑스프레스웨스트는 ‘고속철도 차량을 미국 내에서 생산해야 한다’는 미국 정부의 요구를 중국 측이 맞추기 힘들 것이라는 점을 이유로 밝혔다. 이 사업을 고속철 굴기의 상징으로 내세웠던 중국으로선 충격이 컸다.
중국은 2014년 멕시코에서도 고속철사업을 수주했지만 멕시코 정부가 입찰 과정의 불투명성을 내세워 프로젝트 자체를 무산시켜버렸다. 앞서 베네수엘라에서 착공한 고속철사업은 베네수엘라의 경제난으로 당초 완공 시기인 2012년을 넘겨 중단된 상태다.
◆102개국과 계약했지만 실속은 없어
중국은 2008년 베이징올림픽 개막 직전 베이징과 톈진을 잇는 고속철도를 처음 개통했다. 이후 공격적인 투자를 통해 현재 2만1000㎞의 고속철도망을 구축했다. 이는 세계 고속철 운영 거리의 65%가량에 해당한다.
고속철 분야의 후발주자지만 자국에서 축적한 기술과 저렴한 건설 비용을 앞세워 해외에서 고속철사업을 잇달아 수주했다. 중국 상무부에 따르면 102개국이 중국과 고속철 수입 계약을 맺었다. 액수로는 1430억달러(약 162조6000억원)에 이른다. 작년 상반기에만 22억6000만달러어치의 수출 물량을 수주했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과 리커창(李克强) 총리가 외국을 방문할 때마다 고속철 계약을 따낸 덕분이다. 시 주석은 2014년 남아메리카를 방문했을 때 이 지역 국가들과 태평양과 대서양 연안을 연결하는 남미대륙 횡단철도 건설에 합의했다. 리 총리는 태국, 아프리카, 남미, 인도 등에서 사업 협력 협정을 성사시켰다.
하지만 2014년 완공된 터키 앙카라~이스탄불 구간 외에는 공사가 막 시작됐거나 아예 공사에 들어가지 못한 곳이 많다. 해당 국가의 자금이 부족한 데다 현지 주민 사이에서 거부감이 커졌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중국 고속철의 가격 대비 성능이 다른 국가 고속철에 비해 좋지만 많은 국가에서는 여전히 비싸다고 여긴다”며 “해당 국가의 실질적 이익은 고려하지 않는다는 비판도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중국 철도사업의 해외 진출은 대부분 일대일로 구상과 맞닿아 있다. 중앙아시아~중동~동유럽~서유럽으로 이어지는 화물열차 노선은 지난해부터 정례화했고, 해상 무역로 개척과 맞물린 동남아~중동은 신규 철도 건설과 고속철 수출이 주를 이루고 있다.
베이징=강동균 특파원 kd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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