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표 분석보다 더 두려운 것은 외부전문가들 진단이다. 한국에 구제금융을 집행한 미셸 캉드쉬 전 IMF 총재는 한경과의 인터뷰에서 “10년 안에 한국이 심각한 양상의 시스템 위기에 빠질 우려가 있다”며 “급속한 고령화, 미진한 기업 구조조정, 노동시장 왜곡이 뇌관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당시 IMF 대표단장이던 휴버트 나이스 전 아태국장도 “구조적 취약점을 고치지 않으면 신뢰를 다시 잃을 수 있고, 시장 신뢰를 잃으면 외자는 순식간에 빠져나간다”고 충고했다.
1997년 말 204억달러이던 외환보유액이 3848억달러(8월 말 현재)로 늘었으니 당장 외환의 유동성 위기 가능성은 높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팽창하는 복지와 비대해지는 공공부문을 보면 남유럽국가들(PIIGS)의 재정위기를 남의 일이라고 할 수 없다. 조선업과 중소 ‘좀비기업’들도 불안지대이고, 유난히 많은 개인사업자의 부채 증가도 취약점이다. 어디서, 어떻게 ‘검은 백조’가 나타날지 모르기에 위기다.
캉드쉬 전 총재가 지적한 시스템 위기를 예방할 방법은 전 방위에 걸친 과감한 구조개혁뿐이다. 그는 노동시장과 금융을 개혁이 필요한 부문으로 적시했는데, 전적으로 동의한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부터 ‘양대지침’ 폐기 등 일련의 노동정책은 상식적 개혁과는 다른 방향이다. 내년에 16.4% 오르는 최저임금 문제에서는 1988년(17.6%)~1995년(15.1%) 임금상승률이 매년 두 자릿수로 뛴 사실과 비교해보지 않을 수 없다. 이 기간 경제성장률은 연 5.9~9.2%였다. 성장을 크게 웃도는 임금 급등 이후 경제위기를 맞은 것이다. 그런데도 지금은 노사정위원회 체제조차 복원되지 않고 있다.
공공일자리 81만 개 증대 등으로 커지는 공공부문은 경제에 지속적으로 부담이 될 것이다. ‘야경(夜警)국가론’ 이래 공공의 비효율 제거는 많은 국가의 숙제였지만 웬만한 의지로는 달성이 쉽지 않다. 재정 건전화와 효율적 정부는 중앙과 지방자치단체, 산하기관 모두의 문제다. 안보불안 와중에 나오는 경제위기 경고음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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