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최고실적은 '과거 투자 결실'…"중장기 오너 공백 우려"

입력 2017-10-13 16:47   수정 2017-10-13 18:44

물러나는 권오현 부회장
SK수펙스협 등 대안도 거론



“최고 실적을 내고 있지만 이는 과거 결단과 투자의 결실일 뿐이다.”

13일 자진 사퇴 의사를 밝힌 권오현 부회장의 변(辯)은 전문가들의 인식과 정확히 일치했다. 삼성전자가 역대 최고 실적을 발표한 만큼 의외의 행보로 보이지만, 오너 공백에 대한 중장기 대책 마련에 부심하는 징후로 해석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 평가다.

삼성전자는 이날 올 3분기 매출 62조 원, 영업이익 14조5000억 원의 잠정 실적을 냈다고 공시했다. 앞선 2분기의 사상 최고 실적을 곧바로 갈아치웠다. 글로벌 반도체 시장 호황이 결정적이었다.

이재용 부회장의 부재에도 상승세가 계속됐다. 그러나 이는 ‘착시 효과’ 측면이 크다고 전문가들은 짚었다. 박종훈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는 “큰 틀에서 이미 수년 전 결정하고 투자한 대로 진행됐다. 이번 실적은 그 결과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김창봉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도 “오너가 자리를 비워도 삼성전자는 잘 나간다는 인식은 단견”이라고 지적했다.

삼성전자가 반도체 부문에서 워낙 앞선 기술력을 갖춘 데다 빅데이터·인공지능(AI)·자율주행차 등 유망산업 수요와도 맞아떨어져 당분간은 좋은 실적을 낼 것으로 전망했다.

송재용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는 “삼성전자가 반도체는 물론이고 대부분 분야에서 고른 성과를 내고 있다. 지난해 유일한 약점이었던 스마트폰 부문도 기저 효과로 반등해 적어도 내후년까지는 호실적 추세가 이어질 것”이라면서 “전문경영인 시스템이 잘 정착된 삼성전자의 저력이다”라고 풀이했다.

하지만 오너 공백 장기화로 5~10년 뒤의 대응에는 타격이 불가피할 것으로 내다봤다. 미래를 내다보고 선제적으로 조 단위를 투자해야 하는 중장기 방향 설정에선 뒤처질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박 교수는 “해외 기업 지분 투자, 인수 등이 예년에 비해 확실히 소극적으로 변했다. 전체 사업 포트폴리오 조정에도 영향을 줘 시간이 갈수록 그 결과물이 가시화될 것”이라고 했다.

이날 권 부회장이 “미래 흐름을 읽어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는 일은 엄두도 내지 못한다”고 우려한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단순히 누가 총수 대행을 맡느냐를 넘어 삼성의 의사결정구조가 변화할 필요성을 내비쳤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송 교수는 “오너 공백에 미래전략실 해체로 컨트롤타워 부재까지 겹친 삼성이 대안적 모델을 찾아야 할 시점”이라며 “최태원 회장 공백을 메웠던 SK 수펙스추구협의회 같은 집단의사결정 체제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김봉구 한경닷컴 기자 kbk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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