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건축가 네트워크·경협(經協)자원 적극 활용
도시 마스터플랜 패키지를 수출상품화해야
강철희 < 홍익대 건축도시대학원 교수·종합건축사사무소 이상 대표 >
40년 가까이 건축가로 일하며 개인적으로 가장 신나는 일이 무엇인가 묻는다면 주저 없이 도시설계 마스터 플랜을 택할 것이다. 건축을 종합예술이라 자부하는 필자에게 그만큼 입체적 사고를 요구하는 도전은 없기 때문이다.
도시의 밑그림을 그리는 마스터 플랜이란 해당 지역의 지리적 환경이나 산업적 특성, 가용 기술과 자원은 물론 역사와 문화, 정치·행정, 안보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도시 공동체의 모든 요소를 망라해 수백 년 터전의 바탕을 잡는 일이다. 끝없이 복잡 다양한 도시 방정식을 하나의 확고한 비전 아래 풀어내는 것은 밤잠을 못 이룰 만큼 어렵지만 밤잠을 잊을 만큼 신나는 일이기도 하다.
필자가 2000년대 중국에서의 활동에 이어 최근에는 아프리카와 동남아시아 지역에 적지 않은 시간과 공을 들이고 있는 이유 역시 마스터 플랜에 있다. 유엔 경제사회국의 보고서에 따르면 2050년까지 세계 도시 인구는 25억 명가량 늘어나게 되는데 이 중 90%가 아프리카와 아시아에서 나올 것이라고 한다. 새로운 도시들이 그야말로 우후죽순처럼 솟아나는 두 대륙이야말로 지속가능한 도시 마스터 플랜이 절실히 필요한 현장이자 시장이다.
특히 이들 지역의 각 도시는 급격한 성장에 따른 성장통을 줄이기 위해 고심하며 파트너를 찾고 있다. 난개발과 도시 인프라 부족, 환경오염, 슬럼화 등 앞서 발전한 도시들의 시행착오에서 배우고 선진 도시 건설의 노하우와 기술을 미리 도입해 같은 부작용을 피하려는 것이다. 세계 각국의 정부와 기업들이 앞다퉈 도시 디자인과 도시 솔루션 시장 개척에 나선 것은 바로 이런 수요를 포착해서다. 치열한 경쟁 가운데 한국과 서울은 ‘현실적 롤모델’로서의 확고한 경쟁력이 있어 다행이다. 당장 폭증하는 인구, 턱없이 부족한 인프라를 극복해야 하는 신흥도시들에 수백 년에 걸쳐 아름다운 발전을 이룬 유럽의 선진도시들은 너무 먼 나라 얘기다. 반면 압축적인 성장을 이루며 그 부작용을 잡는 데 첨단 기술을 적극 활용한 한국의 도시 성장 모델은 실질적인 벤치마킹 상대가 되는 것이다.
이런 상대적 이점을 바탕으로 한국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및 기관들 또한 열심히 뛰고 있다. 특히 서울시는 SH공사에 정책수출사업단을 꾸려 적지 않은 성과를 내고 있다니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수도 서울에서 성공을 거둔 대중교통 체계나 폐기물 관리 정책 등을 솔루션으로 수출하려는 시도에 큰 박수와 응원을 보낸다.
함께 현장을 뛰는 동료로서 발전적 제안을 보태자면 교통, 환경, 에너지, 전자정부 등 분야별 솔루션 위주로 이뤄지는 도시 솔루션 수출 사업 구조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 포괄적인 도시 마스터 플랜 디자인을 바탕으로 각 분야 솔루션을 통합적인 시스템으로 제시하는 ‘마스터 플랜 프로그램 패키지’를 개발해보면 어떨까 하는 것이다. 부분적으로 각국 정부가 관심을 보이는 도시 인프라 솔루션을 판매하는 것도 좋지만, 해당 인프라를 포함해 도시의 지리적, 기능적 영역 전반을 아우르는 입체적 네트워크의 청사진을 먼저 서비스할 수 있다면 중장기적으로 더 큰 시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이런 포괄적 마스터 플래닝 프로그램을 우리만의 차별화 아이템으로 키우기 위해서는 적극적인 마케팅이 필요하다. 이미 세계 각국에서 활약하는 우리 건축가들의 네트워크를 활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진취적인 세일즈가 기회를 만든다면 그 기회를 실질적 성과로 이어가는 데에는 국가 차원의 정책적 지원 연계가 필수적이다. 특히 신흥개발국의 도시 단위 프로젝트는 해당 정부의 예산 외에 추가적인 파이낸싱이 필요한 때가 많다 보니 대개 자국 정부의 두둑한 자금 지원에 힘입은 중국 기업들의 차지가 되곤 한다. 우리의 소중한 대외경제협력 자원을 좀 더 전략적이고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사업 발굴 채널을 다각화하고 그 문턱을 낮추는 노력이 필요한 대목이다. 비교적 적은 자원으로도 가능한 마스터 플래닝 지원을 마중물 투자삼아 우리의 도시 솔루션 세일즈에 날개를 달아보면 어떨까.
강철희 < 홍익대 건축도시대학원 교수·종합건축사사무소 이상 대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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