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도만능줄기세포 주도 일본 "혈액 만들고 난치병 정복, 먼 일 아니다"

입력 2017-10-16 19:16  

차세대 줄기세포 앞서가는 일본

일본 바이오현장을 가다

iPS세포 이용 혈소판 생산
고령화 따른 헌혈 감소 해결
파킨슨병·척수손상 치료도

1세대 줄기세포에 머문 한국
"일본·영국처럼 장기 지원 필요"



[ 임락근 기자 ]
“현미경으로 본 건데 똑같죠? 생김새뿐 아니라 실제 기능도 같습니다.”

일본 도쿄 미나토구에 있는 메가카리온 도쿄 사무실. 미와 겐지로 메가카리온 대표는 유도만능줄기세포(iPS세포)로 만든 혈소판과 헌혈 혈액에서 추출한 혈소판 비교 사진을 모니터에 띄워놓고 설명했다. 그는 “일본에서만 한 해 수혈하는 혈소판 제제가 80만 팩”이라며 “헌혈에만 의존하던 혈소판을 대량으로 생산할 길이 열렸다”고 말했다.

◆감염 위험 없애고 보존 기간 늘려

메가카리온은 iPS세포를 산업에 응용한 대표주자다. 출혈을 멈추는 데 필수적 혈액 성분인 혈소판을 대량생산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출혈을 동반하는 외과수술은 물론 혈소판 관련 희귀질환자, 항암치료를 받는 암환자 등에게 필수적이다.

iPS세포로 혈소판을 만들면 헌혈 과정에서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에이즈, C형 간염 등의 감염 위험도 차단할 수 있다. 박테리아 증식 때문에 4일에 불과한 보관 기간도 2주 안팎으로 늘릴 수 있다. 미와 대표는 “헌혈 혈액으로 만든 혈소판 제제는 간혹 면역거부반응이 일어난다”면서도 “특이한 혈액형으로 iPS세포를 만들어 혈소판을 생산해 두면 이런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고 했다.

일본 정부는 2015년 메가카리온을 국가전략사업자로 지정하고 총 27억엔(약 270억원)을 출자했다. 헌혈량 부족을 해결할 수 있는 국가 기반 기술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미와 대표는 “일본 헌혈 인구의 76%가 50세 이하지만 수혈이 필요한 환자는 85%가 50대 이상”이라며 “저출산과 고령화가 고착화되면 필연적으로 헌혈량 부족에 시달릴 것”이라고 설명했다.

메가카리온은 오츠카제약, 시스멕스 등 16개 기업 및 연구소와 손잡고 대량생산에 필요한 인프라를 확보했다. 2020년 상용화를 목표로 내년부터 일본과 미국에서 임상시험에 들어간다.

◆차세대 줄기세포에 집중하는 日

일본에서는 줄기세포 중에서도 iPS세포 연구가 활발하다. 2010년 세워진 교토대 iPS세포연구소(CiRA)가 iPS세포 연구의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다. iPS세포 제조법 발명으로 2012년 노벨상을 받은 야마나카 신야 교토대 교수가 연구소장이다. 300여 명의 iPS세포 관련 연구원이 상주하고 있고 한 해 예산만 80억엔(약 800억원)에 달한다.

기존 성체줄기세포는 연골 등 특정 신체부위를 재생하는 데만 활용된다. 반면 iPS세포는 체세포를 줄기세포로 바꿔 모든 신체부위의 재생 치유에 쓸 수 있는 차세대 줄기세포다. 인간배아를 활용하는 배아줄기세포와 달리 생명윤리 문제에서도 자유롭다.

2005년 ‘황우석 사태’ 이후 배아줄기세포 등의 연구 규제가 강화되면서 국내에서는 차세대 줄기세포 연구가 지지부진하다. 송지환 차병원 줄기세포연구소 교수는 “성체줄기세포가 1세대 줄기세포라면 iPS세포는 2세대 줄기세포”라며 “국내에서도 관련 연구를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무궁무진한 활용 가치

iPS세포로 다양한 질환을 치료하는 연구가 일본에서 순조롭게 진행 중이다. 일본 이화학연구소는 2014년 세계 최초로 난치성 질환인 노인성 황반변성 환자를 대상으로 시작한 임상시험에서 환자의 시력 저하가 멈추는 등 성과를 내고 있다. 교토대는 내년 파킨슨병, 혈소판 감소증, 심장병, 척수 손상 등의 난치병 치료를 위한 임상시험에 나설 예정이다.

신약 개발 등에서도 가시적 성과를 내고 있다. 도구치다 준야 교토대 교수는 iPS세포를 이용해 근육에 뼈가 자라나는 희귀질환 치료 후보물질을 찾아내 최근 임상시험에 들어갔다. iPS세포를 활용한 세계 최초 신약 임상시험이다. 가네코 신 교토대 교수는 iPS세포로 면역항암제를 개발 중이다.

송 교수는 “일본 영국 등에서는 정부가 장기 계획을 갖고 줄기세포 연구를 적극 지원하고 있다”며 “한국이 줄기세포 분야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는 해외 사례를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iPS세포

induced pluripotent stem cell(유도만능줄기세포). 피부 등의 체세포에 특정 인자를 주입해 만든 세포다. 다양한 조직이나 장기의 세포로 분화하고 무한대로 증식할 수 있다. 세계 최초로 iPS세포를 만든 야마나카 신야 교토대 교수는 2012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다.

교토·도쿄=임락근 기자 rkl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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