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을 한 달 앞둔 한 여성이 웨딩드레스를 입어보는 동안 예비남편의 휴대전화로 온 문자.
'알려줘야 할 것 같아서 보낸다'는 메시지와 함께 링크된 주소에는 앞에서 활짝 웃고 있는 여자친구가 전 남자친구와 찍은 성관계 동영상이 플레이 되고 있다.
16일 방송된 KBS 2TV 새 월화 드라마 ‘마녀의 법정’(극본 정도윤 / 연출 김영균 / 제작 아이윌미디어)의 한 장면이다.
이날 방송에서는 불특정 다수 여성들이 연애시절 찍었던 동영상이 인터넷 상에 일파만파 유출되면서 피해를 입는 사례가 다뤄졌다.
극중 정려원과 윤현민은 전 남자친구가 성관계 영상을 인터넷에 유포해 피해를 입은 '일반인 동영상 유출 사건'을 맡게 됐다.
용의자 선상에 여성 피해자의 전 남자친구 김상균은 반성은 커녕 정려원을 성희롱하는 등 대담한 행각을 펼치던 끝에 정려원 오피스텔 욕실에 몰래카메라를 설치한다.
위풍당당 여성 검사가 몰래카메라의 피해자로 전락하게 되는 상황을 예고한 '마녀의 법정'을 통해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된 시청자들도 많다.
극중 피해여성이 "내 눈 앞에서 영상을 삭제하는 것을 봤는데 어떻게 유출된건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하는 장면에 갸웃하던 정려원과 윤현민은 사이버 수사대에게 충격적인 사실을 듣는다.
휴대폰을 클라우드에 백업 설정해 놓으면 로컬에서 삭제해봐야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
실제 윤현민이 찍은 사진을 휴대폰에서 삭제했지만 수사관의 컴퓨터에는 바로 '삭제된 영상'에 해당 파일이 나타났다.
극중 정려원은 "절대로 난 그런 영상은 찍지 않겠다. 왜 그런걸 찍는지 모르겠다"고 호언장담했지만 욕실 몰래카메라에는 속절없이 당할 수 밖에 없었다.
몰래카메라의 공포는 비단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최명길 국민의당 의원(송파구을)이 국립전파연구원으로부터 제출받은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최근 4년간 지정시험기관의 적합성평가를 거쳐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적합등록’이 된 몰래카메라만 117종이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파법상 몰래카메라처럼 전파환경이나 방송통신망 등에 중대한 위해를 줄 우려가 없는 방송통신 기자재는 제조 또는 판매하거나 수입하려는 자가 지정시험기관의 적합성평가기준에 관한 시험을 거쳤다는 사실을 과학기술정보통신부장에게 등록하기만 하면 된다.
몰래카메라의 외관으로 그 실체를 알기도 쉽지 않다. 형상별로 구분해 보면 USB메모리 형태가 21종으로 가장 많았고, 손목시계와 안경 모양이 각각 15종씩으로 그 뒤를 이었다. 펜 종류가 10종, 자동차 리모컨 형태가 8종이었으며 모듈 형태로 원하는 곳에 삽입해 사용하는 초소형 몰래카메라가 8종이었다.
심지어 보조배터리 형태의 몰래카메라와 탁상시계형 몰래카메라, 핸드폰케이스 형태는 물론 단추, 거울, 이어폰 헤드셋, 물병모양, 핸드폰 거치대 등 그 유형도 이루 말할 수 없이 다양하다.
최명길 국민의당 의원은 “몰래카메라에 대한 판매와 구입이 법적으로 아무런 제재가 없는 상황에서 촬영만 못 하도록 하는 것은 순서가 뒤바뀐 것이다. 몰래카메라에 대한 방송기자재 적합성평가 체계를 시급히 정비해 몰래카메라가 시중에 무차별적으로 유통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피해자의 심경을 이해하려 하기보다는 승소하는데 주안점을 두던 마녀검사 정려원이 몰래카메라의 희생양이 되면서 어떻게 위기를 극복할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마녀의 법정'은 단순한 재미 뿐 아니라 몰래카메라와 연인간 영상 촬영의 위험에 대한 경각심을 불어넣었다는 점에서 호평받았다.
이미나 한경닷컴 기자 help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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