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로부터 전해 오는 각설이 타령이 있다. ‘얼 시구시구 들어간다 절 시구시구 들어간다’는 노래 가사는 누구나 한 번쯤 들어 봤을 것이다. 이를 한자로 쓰면 시구시구(矢口矢口) 조을시구(鳥乙矢口) 얼시구(矢口) 절시구(切矢口) 지화자 조을시구(知化者 鳥乙矢口)이다.
시구(矢口)는 화살 시(矢)에 입 구(口)를 합하면 알 지(知)가 돼 지화자 조을시구(知化者 鳥乙矢口)를 만들어낸다. 봉황의 때와 기러기의 때 즉, 봄과 가을의 때를 구분해 아는 것에 대한 가르침을 노래하는 의미다.
지혜 중에 으뜸은 ‘때를 아는 것’이라고 한다. 봄 철새와 가을 철새가 때를 아는 것처럼 지혜로운 자는 변화의 때를 잘 알아야 한다는 뜻이다.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은 집착과 욕심을 부른다. 때에 맞춰 일을 하다가 때가 되면 물러나는 것, 그것이 필자가 각설이 타령에서 배운 지혜이며 그 마음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필자는 2008년 농업에 식품을 결합한 농림수산식품부 발족에 기여하고 초대 장관에 취임했다. 생산에만 한정돼 있던 농업을 가공과 판매, 서비스가 결합된 6차 산업으로 만들기 위해 강도 높은 개혁을 추진했다. 그러나 미국산 소고기를 둘러싼 ‘광우병 괴담’으로 못 다한 일이 많았다. 결국 촛불정국의 책임을 지고 자리에서 물러났다. 때를 알았다. 각설이 타령이 주는 지혜를 생각하며 지금은 물러날 때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훗날 재평가받을 때가 올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그리고 장관 퇴임 후 10년이 흘렀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대한민국에만 경제적 이익을 주고 있다며 개정 협상을 요구하고 나섰다. 당시 한·미 FTA 협상의 역적으로 국민 안전과 주권을 팔아먹은 매국노라는 말까지 들으며 장관직을 내려놨지만, 현재 미국의 재협상 요구는 한·미 FTA가 오히려 ‘잘된 협상’이었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증명하고 있다.
때를 알고 물러나는 것, 그리고 다시 때를 기다리는 것,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그 사이에 있을 ‘뼈를 깎는 추위’를 견뎌낸다면 ‘코를 찌르는 향기’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인생의 변곡점에서 가슴을 녹여준 시 한 수를 다시 한 번 떠올려 본다. ‘불시일번한철골(不是一番寒徹骨) 쟁득매화박비향(爭得梅花撲鼻香), 뼈를 깎는 추위를 한 번 만나지 않았던들 매화가 어찌 코를 찌르는 향기를 얻을 수 있으리오.’
정운천 바른정당 최고위원 gbs200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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