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설의 경영 업그레이드] 외자 유치의 추억

입력 2017-10-19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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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설 논설위원 yskwon@hankyung.com


외환위기 20주년이 되는 해다. 1990년 대 말 외환위기 당시 백가쟁명식으로 처방이 나왔지만 그중에 누구도 거부하기 어려웠던 것은 두 가지였다. ‘글로벌 스탠더드’와 ‘외자 유치’다.

‘글로벌 스탠더드’는 나중에 알고 보니 미국과 국제통화기금(IMF)이 강요한 ‘그들만의 스탠더드’가 적지 않았다는 지적이 있었지만, 외환보유액 고갈로 빚어진 위기국면에서 외자 유치는 그야말로 지선(至善)의 당위였다. 위기 극복에 나선 김대중 정부의 정책 방향도 그랬다.

성과는 바로 나타났다. 외환위기 다음해인 1998년 외자 유치 규모(신고 기준)는 88억5850만달러로 한 해 만에 27% 늘었다. 1999년엔 155억4460만달러로 전년보다 75%나 증가했다. 기업들이 수출에 총력을 기울이고 정부가 문호를 적극 개방한 덕분이었다. 이후 부침이 있었지만 지난해 외자 유치 총액은 모두 213억달러로 1997년과 비교하면 세 배가 넘는다. 그러나 여기까지다.

역차별 논란에 반외자(反外資) 정서 고개

작년 하반기부터 상황이 심상치 않다. 지난해 3분기 전년 동기 대비 2% 늘어나는 데 그치더니 이후 4분기 연속으로 감소세가 확연해지고 있다. 올 들어 3분기 때는 작년 동기 대비 25%나 줄었다. 신고 기준 외국인 직접 투자는 한국에 대한 외국인들의 투자 의향을 반영한 것인 만큼 외국인들이 한국에서 ‘기회’보다는 ‘위기’를 더 많이 보고 있다는 뜻이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한국에서 기업하기가 점점 나빠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지난해 하반기를 보면 한국은 대통령 탄핵 사태에다 북한 리스크까지 겹쳐 기업 환경이 바닥 수준으로 떨어졌다. 올 들어 새 정부가 들어서며 탄핵정국은 마감됐지만 북한 위협은 여전히 해결의 가닥을 잡지 못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규제다. 한국의 규제완화 순위는 OECD 35개국 가운데 30위로 하위권이다. 그런데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이 규제가 훨씬 많아지고 또 강해지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 공정거래위원회의 기업 규제 등은 외국 기업에도 마찬가지 위협이다. 여기다 탈원전 논의야말로 장기적으로 산업 전기 요금 인상에 대한 우려로 외국 기업이 예민하게 반응하는 현안이다.

'글로벌 경기장' 만들어야 성장

여기다 고질적인 반기업 정서가 반외국기업, 반외국자본 정서로 확산되고 있는 게 더 큰 걱정이다. 특히 정치권이 문제다. 지난주 국정감사에서는 구글 페이스북 등 글로벌 기업 한국 지사 경영진이 증인으로 불려나왔다. 국내 기업들이 이들 글로벌 기업과는 다른 대우를 받고 있다며 ‘역차별’을 호소한 데 따른 것이다. 당연히 국내 기업들에만 적용되는 규제를 풀어야 정답일 텐데 방향은 정반대다. 이들 글로벌 기업에 국내 기업과 같은 규제 올가미를 씌우겠다는 결론을 몰아가는 형국이다. 구글과 페이스북이 아예 서비스를 하지 못하도록 막았던 중국을 예로 들며 “중국의 배짱을 배워야 한다”는 정치인도 나왔다.

미국이 법인세율을 대폭 내리면서 외국으로 나갔던 자국 기업은 물론 세계 기업을 유치하기 위해 나서고 있는 시대다. 중국이 미국의 변화에 깜짝 놀라 그동안 외자 유치에 걸림돌이 됐던 악성 규제인 ‘대표사무소 설립 규정’까지 폐기했다는 소식이 우리 정부와 정치인들에겐 뉴스가 아닌 모양이다.

세계적인 외자 유치 경쟁 속에서 글로벌 기업들의 선택폭은 너무나 넓어졌다. 선진 기술을 가진 외국 기업들이 굳이 한국에 와서 사업할 이유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 정부나 민간이나 외자 유치에 목을 매던 그 시절이 옛 추억이 될까봐 두려울 뿐이다.

권영설 논설위원 yskw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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