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커 라인하르트 지음 / 이미선 옮김 / 제3의공간 / 512쪽 / 2만5000원
[ 서화동 기자 ] 1513년 3월 37세의 조반니 데 메디치 추기경이 교황으로 선출됐다. 레오 10세다. 그의 아버지는 당시 피렌체의 권력자로 메디치가의 최전성기를 이끌던 로렌초 데 메디치였다. 로렌초는 교황 인노첸시오 8세와 거래해 아들이 13세 때 추기경직을 따냈다. 교황 레오 10세는 메디치 가문의 이해를 최우선에 두고 모든 권력을 행사했다. 성직 매매와 족벌주의, 면벌부 판매 등도 모두 이런 틀에서 이뤄졌다.
《루터》는 이처럼 교황권이 세속적 이해관계와 한몸으로 움직이던 르네상스 시대에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이 어떻게 시작되고 진행됐는지를 새로운 시각에서 재구성한다. 루터는 믿음의 사도로, 교황은 부패한 권력자로 규정해온 일방적 구도에서 벗어나 양측의 주장을 두루 살펴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종교개혁은 절대권력 교황과 독일 변방의 한 수도사가 펼친 단순한 신학적 논쟁이나 교회 내적 갈등이 아니라 정치와 경제를 아우르는 거대한 세력 간의 다툼이었다는 게 저자의 시각이다. 책의 부제가 ‘신의 제국을 무너트린 종교개혁의 정치학’인 이유다.
면벌부 판매는 루터 수세기 전부터 행해져 왔다. 루터도 처음부터 교황의 권위와 기존 기독교 제도를 전면 부정하지는 않았다. 루터의 95개 조 반박문이 개혁의 도화선이 된 것은 유럽 다른 지역에 비해 바티칸에 의해 소외됐다고 여겨온 독일의 제후, 지식인, 성직자들이 있어서였다. 루터의 주장은 이들 사이에 큰 반향을 일으켰고, 이들의 불만을 자극하면서 루터는 자신의 지지세력으로 구축했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이 책은 특히 루터의 탁월한 미디어 전략에 주목한다. 루터는 토론에선 어눌했지만 논쟁이 끝날 때마다 이를 기록하고 인쇄해 배포함으로써 독일 민중과 소외된 지식인, 성직자들의 지지와 결속을 확대했다. 지금으로 치자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활용의 고수였다. 교황청은 이를 얕잡아봤다. 뒤늦게 맞불을 놓으려 했지만 라틴어만 고집해서 정작 독일 민중 대부분은 읽지도 못했다. 루터와 지지자들은 교황청 인쇄물의 인쇄를 방해했고, 심지어 사재기를 통해 배포를 막기도 했다고 한다.
루터 측의 기록과 주장 위주로 서술돼온 기존 종교개혁 연구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저자의 노력이 돋보인다. 바티칸 문서고에서 당대 교황청 기록을 발굴해 당시 양측이 생산·배포한 서간, 담화, 회의록 등을 비교하며 상황을 재구성했다. 양측의 치열한 미디어 전술과 권력 재편을 위한 황제와 제후들의 정치적 계산 및 합종연횡, 중심부 로마와 변방 독일의 해묵은 감정대립도 종교개혁을 탄생시킨 변수로 고려했다. 기존의 종교개혁 관련서와 확연히 구별되는 책이다.
서화동 문화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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