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팀 리포트] '우후죽순' 수제담배 가게…탈세·불법 제조 연기 '모락모락'

입력 2017-10-20 18:43   수정 2017-10-27 18:09

경찰팀 리포트

만들면 합법·팔면 불법
"제조 안했다" 잡아떼면 그만
일선 경찰서 단속 어려워
검찰도 처벌 여부 놓고 '논란'

수제담배 가게는 '잡화점'
담뱃잎 250g 수입땐 '무관세'
수제담배, 소비세 등 안붙어
시중 담뱃값의 70% 수준



[ 박진우 기자 ]
서울 중랑구 주택가 한복판에 있는 한 수제담배 가게. 안에 들어서자 주인이 손수 담뱃잎을 말고 있었다. 한쪽에는 보루 단위로 포장된 담배들이 수북했다. 한 손님이 “예약한 담배 세 보루를 달라”며 신용카드를 내밀었다. 2~3일 전 미리 주문해놓은 뒤 찾아가는 식이다. 가격은 한 갑에 3000원, 보루당 2만9000원. 시중 가격의 70% 수준이다. 담뱃갑에는 어떤 경고문구도 쓰여 있지 않았다. 가게 주인은 “천연 담뱃잎으로 만들어 일반 담배보다 타르가 적다”며 근거 없는 예찬론을 늘어놨다.

이곳에서는 전화나 인터넷으로 주문받아 배송도 해준다. 멀리는 경기 화성시에서도 주문이 온다고 했다. 하루 주문량만 20~30보루. 주인은 “임차료를 제외하고 가게를 여는 데 드는 기본비용은 4000만~5000만원이면 충분하다”고 말했다. 가맹점 본사 측 관계자도 “창업을 희망하는 전화가 하루에만 두세 건씩 온다”고 전했다. 위법이 아니냐는 질문에 “아직까진 괜찮다”는 답이 돌아왔다.

“제조 안 했다”고 잡아떼면 속수무책

수제담배 가게가 크게 늘고 있다. 20일 한국담배판매인중앙회에 따르면 전국에 있는 수제담배 가게는 380여 개로 집계됐다. 일부 수제담배 프랜차이즈 본사는 500~600곳으로 추산하기도 한다. 임상혁 한국담배판매인중앙회 상무는 “2015년 담배소비세 인상을 계기로 국내에 생겨나기 시작한 수제담배 가게는 행정 공백 상태가 심각했던 지난해 말부터 급증했다”고 말했다.

담배사업법에 따르면 정부 허가를 받지 않은 회사나 개인이 담배를 제조 판매하는 행위는 불법이다. 국내에선 KT&G와 영국계 담배회사인 BAT코리아만 합법적으로 담배를 제조·판매할 수 있다. 담배 제조를 위한 정부 허가를 신청하려면 300억원 이상의 자본금이 있어야 한다. 무허가로 담배를 제조하다 적발되면 3년 이하 징역이나 3000만원 이하 벌금, 무지정 판매는 6개월 이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 벌금형에 처해진다.

하지만 담배 재료인 담뱃잎을 판매하는 행위와 이를 사들인 소비자가 스스로 담배를 만들어 피우는 것은 불법이 아니다. 우후죽순 늘어난 수제담배 가게들도 이 같은 틈을 노렸다. 현행법상 수제담배 가게에서 취급하는 담뱃잎은 담배가 아니라 농산물로 분류된다. 중랑구 가게에도 ‘담배소매업’이 아니라 ‘잡화’ 업종으로 신고한 영업허가증이 걸려 있었다. 가게 직원이 궐련에 넣기 위해 담뱃잎을 자르는 순간 담배 제조행위로 간주돼 불법이지만 단속의 손길은 미치지 못하는 실정이다. 경찰 관계자는 “직접 조사하러 나가도 가게 주인이 자기가 말아 판매한 것이 아니라고 잡아떼면 더 이상 사실관계 확인이 어렵다”고 토로했다.

무관세에다 담배소비세까지 ‘탈세’

담뱃잎이 농산물로 분류되기 때문에 수입 시 세관에서도 일반 담배 관세율(40%)의 절반에 불과한 20%만 부과된다. 250g 미만을 수입할 경우 ‘자가사용’으로 분류돼 아예 ‘무관세’로 들여올 수 있다. 또 시중에서 판매하는 담배 한 갑엔 담배소비세 1007원, 지방교육세 443원 등을 포함해 3318원이 세금으로 붙지만 수제 담배는 이에 해당되지 않는다. 가격이 시중 담배 가격의 70%로 저렴한 이유다.

안전성에 대한 우려도 크다. 담배가 아니라 일반 농산물로 취급되다 보니 제대로 된 성분 검사가 이뤄지지 않는다. 담뱃갑에도 경고문구를 삽입할 의무가 없다.

영업허가증을 내준 일선 구청에서는 대부분 수제담배 가게가 담뱃잎만 팔고 담배를 직접 제조하지 않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었다. 간혹 현장 실사도 나가지만 수제담배 불법제조의 증거를 확보하기가 쉽지 않다는 설명이다. 인허가 때도 법 테두리 안에서 신청이 들어오면 허가증을 내주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이처럼 관계당국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사이 아예 정식으로 담배소매업 허가까지 받아 대형 수제담배 매장을 내는 사례도 등장했다.

경찰 단속도 주먹구구식이다. 담뱃잎 판매행위에 대한 명확한 처벌 규정이 없는 탓이다. 경북 영주경찰서는 지난 8월 직접 담배를 만들어 판매한 업자뿐 아니라 담뱃잎을 팔면서 가게에 기계를 배치해 손님이 직접 말도록 한 업자들도 검찰에 송치했다. 반면 서울 종암경찰서는 지난 4월 내부 토론 끝에 자신이 스스로 위법을 시인한 업자만 불구속 입건했다. 같은 달 안동경찰서도 담배사업법 위반 혐의로 4개 업체를 단속해 수제담배 제조가 확인된 업자 두 명만 검찰에 넘겼다.

기존 담배사업법만으로 처벌이 가능한지 검찰 내부에서도 논란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북부지검은 담배를 제조한 것으로 드러난 가맹점 본사 대표만 기소하고 가맹점주는 기소유예 처분하기도 했다. 실제 가맹점 본사가 가맹점주에게 담배 제조 행위가 불법이 아니라고 꼬드겨 끌어들이는 사례가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해외처럼 담뱃잎도 담배로 규정해야”

미국 영국 등에선 이미 수제담배를 담배의 일종으로 취급해 규제하고 있다. 미국은 2009년 도입한 가족흡연방지 및 담배규제법(FSPTCA)에서 수제담배를 담배에 포함해 식품의약국(FDA)에 제조, 유통, 마케팅에 관한 포괄적 권한을 부여했다.

영국 정부도 지난 5월부터 금연법을 시행하면서 기존 두 갑(20g)까지 허용했던 수제담배 판매를 아예 금지했다. 담배 최저 구입가를 8.82파운드(약 1만3000원)로 높이기 위해서다. 일본에서도 담뱃잎까지 담배로 정의해 수제담배가 일반 담배와 동일하게 취급된다.

국내에서도 기획재정부가 내년 초 수제담배 판매점에 자동화 기기를 설치하지 못하도록 담배사업법 개정안을 추진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박진우 기자 jw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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