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의 아이콘'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
[ 김동윤 기자 ]
경제학자들은 ‘진입장벽’이란 개념을 설명할 때 종종 자동차산업을 예로 든다. 대규모 자본금, 높은 브랜드 충성도, 고도의 마케팅 기술 등이 필요해 새로운 사업자가 진입하기 가장 어려운 산업 중 하나로 자동차산업을 꼽는다. 1956년 미국 포드자동차가 뉴욕증시에 상장한 이후 반세기가 지나도록 다른 자동차 기업이 상장하지 못 한 것은 진입장벽 때문이었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로드스터’ ‘모델S’ 등으로 전기차 생산을 실현하면서 그런 자동차산업의 패러다임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자동차 역사에서 머스크의 등장은 헨리 포드의 혁신만큼이나 중대한 사건으로 기록될지 모른다고 전문가들은 평가하고 있다.
“세상을 바꿔놓겠다”
머스크는 1971년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태어났지만 17세 때 캐나다로 건너갔다가 다시 19세 때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12세에 비디오 게임을 개발해 번 돈 500달러를 제약회사 주식에 투자할 정도로 사업가적 기질이 번득였다. 미 펜실베이니아대에서 경제학과 물리학을 전공한 뒤 스탠퍼드대 박사과정에 입학하자마자 온라인 기반 지리정보가공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 집투를 설립했다. 1999년 집투를 매각해 2200만달러를 손에 쥔 그는 모바일 결제업체 페이팔의 공동 창업자로 참여했다. 페이팔이 이베이로 매각되면서 1억8000만달러를 벌었다.
머스크는 불과 31세에 억만장자 반열에 올랐지만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세상을 바꿔놓겠다”며 마틴 에버하드와 마크 타페닝이 창업한 전기차 제조업체 테슬라모터스에 2004년 합류했다. ‘무모한 도박’이라는 주변 사람들의 만류에도 그는 ‘전기차=테슬라’란 공식을 각인시키는 데 성공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을 비롯한 미국 주류 언론은 머스크를 ‘혁신의 아이콘’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테슬라모터스: 일론 머스크, 자동차의 패러다임을 바꾸다》의 저자 찰스 모리스는 “머스크는 그야말로 주문제작된 듯한 영웅”이라고 썼다. 단순히 돈을 많이 벌기보다 세상을 변화시키겠다는 원대한 꿈을 꿨고, 그 꿈을 실현하고 말겠다는 열정과 집념이 ‘머스크식 혁신’의 밑바탕이라고 했다.
‘갖고 싶어 할 전기차’
머스크가 내건 목표는 “단순히 전기차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갖고 싶어 하는 전기차를 만드는 것”이었다. 그가 테슬라에 합류할 당시만 해도 전기차는 완전충전 후 주행 가능한 거리가 60㎞ 전후에 불과하고, 최고속도도 시속 100㎞가 채 안됐다. 머스크는 우선 디자인과 성능면에서 BMW, 벤츠와 같은 고급세단에 버금가는 전기차를 만들면 승산이 있다고 판단했다. 다만 이를 단기간에 실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3단계 전략’은 그래서 나왔다. 처음에는 스포츠카 같은 고가 모델(로드스터)을 소량 생산해 고급 이미지를 형성한 뒤, 중간가격 모델(모델S)을 생산해 기술 노하우와 자금을 축적하고, 최종적으로 대량 판매가 가능한 보급형 모델(모델3)을 만드는 것이다. 2006년 7월 로드스터가 공개되자 “애스턴 마틴 스포츠카를 비롯해 그동안 타본 어떤 차보다 빠르고 매력적이다” 등 찬사가 쏟아졌다. 지난해에는 보급형 세단인 모델3 시제품만으로 전 세계에서 50만 대에 이르는 선주문을 받았다.
특허 개방 자신감도
머스크의 꿈을 실현 가능하게 한 기술적 혁신은 전기차 동력인 배터리였다. 그는 로드스터를 개발할 때 기존 전기차에서 쓰던 대용량 폴리머형 배터리 대신 리튬이온배터리를 사용했다. 리튬이온배터리는 노트북컴퓨터 휴대폰 등에 두루 사용되고 있어 가격이 상대적으로 싸고, 공급 차질이 빚어질 가능성이 적다는 판단에서였다.
모델S는 자동차 구조면에서 ‘혁명적인’ 변화를 시도해 성공했다. 테슬라 이전에 도요타, 혼다, 포드자동차 등에서 개발한 전기차는 모두 기존의 가솔린엔진 모델에 전기 구동장치만 새로 장착하는 방법을 썼다. 가솔린 자동차에 배터리팩을 장착하다 보니 전기 구동장치 특유의 이점이 사라졌다.
머스크는 테슬라 디자이너들에게 “백지처럼 깨끗한 상태에서 디자인하라”고 주문했다. 디자이너들은 자동차 바닥 전체에 배터리팩을 까는 것이 최선이라는 결론을 도출했다. 덕분에 모델S는 동급 다른 세단들에 비해 실내공간이 넓고, 무게중심이 낮아져 핸들링이 크게 향상된 전기차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었다.
데이비드 색스 페이팔 최고업무책임자는 “내가 만나본 사람 가운데 일론만큼 크게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다”고 평가했다. 단적인 사례가 2014년 6월 테슬라의 특허 개방 결정이다. 머스크는 자신의 블로그에 “테슬라의 전기자동차 관련 특허를 (무료로) 공개하고, 이를 사용하는 어떤 기업에도 소송을 걸지 않겠다”고 썼다.
당시는 애플 삼성전자 등 글로벌 경쟁기업들이 치열한 특허전쟁을 벌이고 있던 터라 머스크의 선언은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하버드비즈니스리뷰는 “매우 영리한 전략”이라고 했다. 전기차 생산 업체가 늘어나면 부품가격이 하락하고, 테슬라가 제시한 특허를 다른 자동차 업체들도 사용하면 테슬라의 영향력이 더욱 확대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제1원칙 따라라”
머스크는 테슬라뿐 아니라 테슬라 자회사인 솔라시티(태양광발전 사업), 스페이스X(우주탐사 사업) 등에서도 전례 없는 성과를 일궈냈다. 공개강연회 TED의 기획자 크리스 앤더슨은 머스크에게 “한 사람이 이 모든 혁신을 이룰 수 있는 비결이 뭐냐”고 물었다.
머스크는 “‘제1원칙’을 따르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그가 말하는 제1원칙이란 어떤 사물을 생각할 때 다른 사람의 생각을 바탕으로 유추하지 말고, 직접 물질의 근본적인 것까지 파고들어 거기서부터 다시 생각하는 일이다.
그가 전기차 생산을 준비할 당시 가장 큰 난관 중 하나는 배터리팩 가격이 너무 비싸다는 것이었다. 보통 사람 같으면 대개 이 가격을 기준으로 생산비용을 짠다. 머스크는 배터리의 구성 소재가 카본, 니켈, 알루미늄, 철 등으로 이뤄져 있고, 이들 재료를 런던금속거래소(LME)에서 직접 사면 훨씬 싼 가격에 확보할 수 있다는 걸 간파했다.
스페이스X를 창업할 때는 미국 항공우주국(NASA)이 쓰는 비용의 10%로 로켓을 쏘아올리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머스크는 스페이스X 직원들에게 “우리의 첫 번째 목표는 기존 로켓 제작회사들에 만연한 사고방식을 깨뜨리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로켓 비용을 대폭 줄이는 재활용 로켓을 구상하고 실현한 배경이다.
테슬라·스페이스X·솔라시티 등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은 공통적으로 이렇게 얘기한다. “우리가 하는 일이 무모하다고 느껴질 때가 많다. 그런데 일을 할수록 머스크가 불가능을 현실로 바꿀 것 같다는 생각이 들게 된다.”
김동윤 기자 oasis93@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