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경목 산업부 기자) 한국경제신문에서 반도체를 담당하고 있다고 하면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 “지금의 메모리 반도체 호황이 언제까지 가겠느냐”는 것입니다. 다른 업종들이 상대적으로 부진한 가운데 한국 경제의 반도체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반도체 경기가 국내 경기 전망의 바로미터가 될 수 있기 때문인듯 합니다. 개인적으로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혹은 반도체 장비업체들의 주식을 매수하신 분들도 비슷한 맥락에서 궁금증을 가지시지 않을까 싶네요.
지난주 열린 ‘한국 전자전’은 이같은 궁금증을 해소하기에 좋은 기회였습니다. 세계 최대 시장조사업체 IHS마킷의 렌 젤리넥 반도체 담당 부사장이 반도체 시장 전망에 대한 발표를 했고, 반도체 업계와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이 모여서 시장을 전망하는 ‘반도체 시장 전망 세미나’도 있었습니다. 여기서 얻은 시장에 대한 전망은 세 가지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요약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반도체 전망이 궁금하신 분이라면 참고하셔도 될 거 같네요.
첫번째 질문, 중국 반도체업체들이 공장을 가동하는 내년 하반기에는 반도체 값이 떨어질 것인가.
중국 업체들의 공장 가동은 반도체 가격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 못할 것입니다. 중국에서는 JHICC가 D램 공장을, YMTC가 낸드플래시 공장을 내년말 본격 가동할 예정입니다. 시제품이 나오는 것으로 시장에 영향을 줄만한 반도체 물량이 쏟아지는 시점은 2019년 상반기 정도가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하지만 이마저도 반도체 호황을 끝내기에는 부족합니다. 중국 업체들이 만드는 D램과 낸드는 한국 업체들이 생산하는 것보다 미세화가 뒤쳐지고, 안정성이 떨어지는 제품입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워낙 앞서나가다 보니 한국인들은 관심이 없지만 세계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는 난야를 비롯해 대만과 일본의 몇몇 업체들이 중심이 된 ‘2선 시장’이 있습니다. 중국 업체가 양산하는 반도체는 최소 5년간 이 시장에서 경쟁을 벌일 것이고 한국 업체들이 생산하는 메모리 시장을 잠식하려면 좀 더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전망입니다.
두번째 질문, 그래서 반도체 호황은 몇 년간 끄떡 없나요.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세계 경기에 달려 있다는 것이 답입니다. IHS의 분석에 따르면 생산되는 메모리 반도체의 70%는 스마트폰과 PC 등 B2C 제품에 사용되고 있습니다. 당연히 세계 경기가 나빠져 소비자들이 전자제품을 적게 사면 반도체의 수요도 떨어지고 가격도 떨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주요 예측기관들은 내년까지 세계 경기가 나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같은 전망이 들어맞는다면 내년말까지는 강세를 유지하겠죠.
문제는 세계 경기를 예상하는 것도, 반도체 시황을 예상하는 것도 쉽지는 않다는 것입니다. 한 국내 반도체 업체의 고위 임원은 “작년 하반기부터 반도체 호황이 시작됐는데 사실 나는 직전까지 호황이 올지 몰랐다”고 하더군요. 이번 호황의 시작은 스마트폰 제조업체들이 스마트폰에 들어갈 메모리 용량을 대폭 늘리며 시작됐습니다. 다만 전자전에 참석했던 박성욱 SK하이닉스 부회장이 “내년 상반기까지는 괜찮을 것”이라고 말한 부분은 참고할만 합니다. 전자업체들은 최소 6개월의 여유를 가지고 반도체 주문을 합니다. 박 부회장의 발언은 내년 상반기에 판매할 반도체 수주가 올해 못지 않게 많이 수주했다는 것을 방증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세번째 질문, 반도체 호황이 끝나면 예전과 같은 치킨게임이 재연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치킨게임은 주로 D램을 중심으로 벌어졌는데 이번 호황 과정을 지켜보면 과거와는 다른 점이 있습니다. 과거에는 PC나 스마트폰이 새로 등장하며 시장을 이끌었습니다. 낸드는 하드디스크드라이브(DDR)가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로 대체됐다는 점에서 분명히 새로운 제품이 등장했습니다. 하지만 D램에서는 딱히 그렇게 볼만한 제품이 없습니다. 전반적인 수요가 견조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지금처럼 폭발적인 가격 상승을 이끌만한 새로운 제품은 없었다는 것입니다.
전문가들은 D램 제조업체들이 적당히 수요를 창출하면서 수익을 내는 ‘스윗 스팟’을 찾았다고 봅니다. 치킨 게임을 거듭하며 D램 제조업체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마이크론 등 3개 업체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서로 생산량을 조절해 가며 시장을 망가뜨리지 않고 3개 사가 모두 수익을 올리는 ‘무언의 절충점’을 찾았다는 것입니다. D램은 삼성전자 메모리 반도체 수익의 70%, SK하이닉스는 90%를 차지합니다. 호황기가 끝나더라도 D램의 실적 하락폭이 작다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실적 부진도 크지 않을 것입니다.
물론 이는 이들 업체의 주식을 갖고 있는 분들에게는 큰 위로가 되지 않을 겁니다. 주식은 미래에 대한 기대를 반영하기 때문에 생각보다 영업이익 감소폭이 적지 않더라도 주가는 크게 출렁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끝) / autonom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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