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모씨(70)는 서울 시내 대형 아파트단지 경비원이다. 그의 일과는 새벽 6시에 시작된다. 교대하자마자 청소부터 한다. 가을이 깊어지면서 낙엽도 부쩍 많아졌다. 오전 7시면 더욱 바빠진다. 입주민들의 출근이 시작되면서 일렬주차된 차를 밀어줘야 한다. 지은 지 30년 된 이 아파트엔 지하주차장이 없다. 매일매일이 주차전쟁이다. 일렬주차는 기본이다. 누군가 차를 밀어주지 않으면 차를 빼기도 힘들다. 김씨 같은 고령의 경비원에겐 하루 일과 중 가장 힘든 일이다.
쓰레기 분리 수거, 택배 보관, 주변 청소 등을 하다 보면 하루가 훌쩍 지난다. 밤 11시 좁은 경비실에서 눈을 붙인 뒤 새벽 6시 교대한다. 이렇게 해서 받는 월급은 140만원 남짓이다. 그래도 김씨는 좋다. 일을 할 수 있는데다 노부부 생활비도 마련할 수 있어서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실직 위기
지금은 아니다. 불안하기 짝이 없다. 입주자대표회의는 최근 주민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제목은 ‘경비인력 구조조정을 위한 설문조사’. 최저임금이 크게 오르면 입주민들의 경비비 부담도 커지는 만큼 대책을 마련하자는 취지였다. 경비원들 사이에선 ‘경비원 절반을 줄인다’느니, ‘나이 많은 사람부터 자른다’는 등의 별별 흉흉한 소문이 무성하다. 김씨는 ‘월급이 오르지 않아도 좋으니 일만 계속했으면…’하는 마음이 간절하지만, 소원이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최저임금은 올해 시간당 6470원에서 내년엔 7530원으로 16.4% 오른다. 정부 공언대로라면 2020년엔 1만원이 된다. 김씨가 일하는 아파트 동(棟)의 가구는 115㎡, 125㎡로 구성됐다. 입주민이 부담하는 월 경비비는 115㎡ 기준 올해 10만2990원에서 내년엔 12만6520원으로, 2020년엔 16만7970원으로 오른다. 125㎡는 같은 기간 12만550원에서 14만8090원, 19만6610원으로 인상된다. 3년 새 경비비가 63% 오르게 된다.
입주자대표회의에서 제시한 경비비 절감 방안은 세 가지다. 경비인력을 절반으로 줄이는 방안, 외곽 경비초소를 설치하는 방안, 출입구에 자동문을 설치하는 방안 등이다. 이 중 경비초소와 자동문을 설치하는 데는 비용이 많이 든다며 사실상 경비인력을 절반으로 줄이는 방안에 대해 찬반을 물었다. 김씨가 일하는 아파트 단지엔 3100가구가 입주해 있다. 경비원만 130여 명이다. 자칫하면 이 중 절반이 일자리를 잃을 수 있다.
입주민들의 선택에 운명 달려
최저임금 인상은 정말 좋은 취지다. 시간당 1만원은 받아야 최소한의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있다는 주장에 토를 달 사람은 드물다. 문제는 역시 재원부담이다. 영세 중소기업이나 자영업자에게 어느 날 갑자기 돈이 하늘에서 뚝딱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사람을 줄이는 수밖에 없다.
여기서 일하는 사람들은 하소연할 곳도 마땅치 않다. 그럴듯한 노조가 있는 것도 아니다. 최저임금위원회에서 정기 상여금과 교통비, 중식비 등도 최저임금에 포함시키는 방안을 검토한다고 하지만, 여기에 해당되지도 않는다. 독일과 일본처럼 업종별·지역별 특징을 감안해 차등 적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지만, 아직은 검토조차 되지 않고 있다.
아파트 경비원은 더욱 심하다. 이들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경기도 분당의 어느 아파트단지처럼 경비원 감축 방안에 대해 입주민들이 반대하는 ‘선의’를 기대하는 게 고작이다. 이런 경비원이 전국 980만 가구 아파트(2015년 기준)에 40만여 명이나 된다.
김씨는 과연 아파트 경비원을 계속할 수 있을까. 결과는 이번 주말 나온다.
하영춘 부국장 ha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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