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대생들 결혼·출산 기피현상 충격
저출산→고령화→성장률하락→재정악화 '악순환 고리' 경계
이 국장 "재정건전성보다 저출산등 효율적 투자 중요"
[ 워싱턴=박수진 기자 ]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총재가 한국을 ‘집단적 자살사회(collective suicide society)’라고 표현했다고 이창용 IMF 아시아·태평양 담당 국장이 23일(현지시간) 전했다. 한국이 여성들의 출산회피로 고령화 급격히 진행되고, 이것이 성장률과 생산성 저하, 재정 여건 악화로 연결되는 ‘악순환의 고리’로 빠져든 상황에 대한 비유다.
이 국장은 이날 워싱턴DC 한국문화원에서 특파원들과 가진 간담회에서 한국 재정 정책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이 같이 전했다. 이 국장은 IMF내에서 총재와 수석 부총재을 제외하고, 가장 영향력이 센 조직내 서열 3위로 꼽힌다.
이 국장에 따르면, 라가르드 총재는 지난달 9일 한국 방문시 이화여대에서 학생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간담회 주제는 ‘한국 교육시스템의 미래와 여성의 역할’이었다. 라가르드 총재는 간담회에서 학생들로부터 ‘충격적인’(?) 애기를 들었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결혼·출산과 함께 직장을 그만두고 경력도 단절될 수 밖에 없는 ‘유리천장’의 존재를 알게 됐다”며 결혼과 출산 의향이 없다고 밝혔다. 한 학생은 “한국 여성들이 느끼는 좌절감은 ‘유리천장’이 아니라 ‘시멘트 천장’”이라고도 표현했다. 라가르드 총재가 예기치 않은 답변에 당황해 “결혼과 육아도 큰 의미가 있다”며 “승진이 2~3년 늦어지더라도 아이를 갖는 게 중요하다”고 학생들을 타일렀다는 전언이다.
라가르드 총재는 간담회 후 “이런 문제(출산 기피현상)가 한국사회의 가장 큰 문제”라며 “한국은 마치 집단적 자살사회와 같다”고 표현했다는 것이다. 이 국장은 “한국은 기본적으로 재정에 여력이 있기 때문에 재정을 저출산 대책에 과감히 투입하면 성장률도 높이고 사회안전망도 확대할 수 있다”며 저출산 투자를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것에 비유했다.
그는 그러나 한국에서는 재정이 성장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은 지난해 10조원에 가까운 초과 세수를 거뒀다. 그는 “재정 건전성도 중요하지만 실질성장률이 잠재성장률보다 떨어지는 상황에 초과 세수를 내는 것은 바람직 하지 않다”며 “매년 국내총생산(GDP)대비 1~2% 넘위의 재정적자를 내고 그것이 성장에 기여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라가드르 총재도 지난달 11일 문재인 대통령을 면담했을 때 “저출산 문제가 일본 수준으로 가서 그때 가서 잡으려면 더 큰 부담과 고통이 따를 것”이라며 “재정여력을 저출산 문제에 투입해 여성들이 더 많이 일할 수 있게 하고 출산도 늘리는 게 거시적으로도 한국경제에 바람직하다”는 의사를 전달했다고 이 국장은 전했다.
이 국장은 한국의 가계부채 문제와 관련해 “한국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중에서 가계부채가 높은 편이지만 부유층이 가계 부채를 더 많이 지고 있고, 대부분 담보대출 형식”이라며 “급격한 부동산 가격 변동이 없는 한 위기요인이 될 가능성은 적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IMF가 주목하는 것은 (가계부채 증가)속도’라며 ”외환위기 이후 빠르게 증가한 만큼 지금부터 올라가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국장은 미국의 12월 금리 인상 가능성이 유력해지고 있는 데 대해 “(국내외) 금리 격차가 생긴다고 해서 (국내) 자본 유출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라고 내다봤다. 다만, 가계부채가 많은 상황에서 한국도 금리인상을 앞두고 있어 금리인상이 성장률 둔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IMF가 한국의 내년 성장률을 올해와 같은 3%로 전망한 것에 대해서는 “정보통신(IT)호황이 꺼지더라도 미국과 유럽이 경기회복을 보이고 있고, 추가경정예산 편성등의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 국장은 다음 달 초 발간되는 세계금융안정보고서에서 중국 금융 시장 상황에 대한 중요한 내용이 담길 것이라고 예고했다.
워싱턴=박수진 특파원 ps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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