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밀레니엄포럼] 김동연 "노동시장 수요·공급·구조개혁 함께 풀어야 일자리 문제 해결"

입력 2017-10-24 19:14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분배 정책만으로는 성장 힘들어"
고용 안정성 OECD 평균 수준 도달하면
노동유연성 높이는 사회적 대타협 가능

블록체인 등 신산업에 '규제 샌드박스' 도입
가계부채 대책, 모럴해저드 문제 신경썼다



[ 김일규/오형주 기자 ]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24일 한경 밀레니엄포럼에서 ‘소득주도 성장’보다 ‘혁신 성장’이란 단어를 더 많이 썼다. 김 부총리는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서는 분배 문제를 건드리지 않을 수 없다”면서도 “분배 구조 개선만으로는 성장을 이끌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혁신으로 생산성과 효율성을 높여 경제 파이를 늘리고 경제를 다이내믹하게 만들겠다”고 했다. 블록체인(가상화폐의 기반기술) 같은 신산업에 ‘규제 샌드박스(사전 허용, 사후 규제)’ 원칙을 적용하는 걸 고려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정부가 다음달 내놓을 혁신창업 종합대책에 청년들이 하고 싶은 일을 찾도록 돕는 플랫폼 구축 방안을 담겠다고도 했다.

일자리 정책에 대해선 “공공부문이 마중물이 되겠지만 결국 노동시장 구조개혁이 필요하다”며 “구조개혁을 위해선 사회적 대타협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실업급여 지급기간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이 되는 등 고용 안정성이 어느 정도 확보되면 노동 유연성을 논의해야 한다는 의미다. 한계기업 구조조정에 대해서도 처음 언급했다. 그는 “기업 주도의 사전 구조조정이 필요하지만 이 과정에서 채권은행도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만우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정부가 과세표준 2000억원 초과 법인에 대한 법인세율을 22%에서 25%로 올리기로 한 것은 세수 확대 목적보다 정치적 구호 성격이 짙은 것 같다. 그런데 그렇게 되면 과표 4000억원 규모 법인이 법인세 때문에 과표 2000억원 이하 법인 두 개로 회사를 쪼갤 가능성도 있다.

▷김동연 부총리=올해 초과세수가 19조~20조원가량 될 것으로 예상하는데 법인세 인상에 따른 세수효과는 연간 2조6000억원 정도다. 이런 상황에서 단순히 세수효과를 위해 법인세를 올리는 건 아니다. 여러 함의를 지니고 있다.

▷이만우 교수=중앙정부가 지방교부금을 너무 많이 주고 있다. 지방자치단체가 이 돈으로 중·고등학생 교복까지 사준다. 출산하면 2000만원까지 주는 곳도 있다. 조절이 필요하다.

▷김 부총리=지방교부금은 내국세의 40% 정도인데, 여러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 그러나 지자체는 또 여러 주문을 한다. 지방재정 분권을 종합적으로 검토 중이다. 틀을 바꾸지 않는 한 한계가 있다.

▷이종화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정부가 일자리를 늘려 경기를 회복시키겠다고 하는데, 미국을 보면 2009년 10%를 넘던 실업률이 4%대까지 떨어졌지만 경기는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생산성이 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도 생산성 하락이 문제다. 이게 어려우니까 적당히 넘어가는 것 아닌가.

▷김 부총리=생산성 하락을 간과하거나 무시하는 것이 아니다. 정부가 추진하는 혁신성장은 경제 전반의 생산성과 효율성을 높여 파이를 늘리겠다는 것이다. 생산성 하락 문제를 근본적으로 같이 보고 있다.

▷이종화 교수=최저임금을 올리고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는 것은 기존 일자리만 좋게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청년층은 더 문제다. 청년 일자리가 핵심이 돼야 한다. 정부 예산으로 공공부문 일자리만 창출해서는 곤란하다.

▷김 부총리=일자리 문제는 노동시장의 수요와 공급, 그리고 구조개혁 문제다. 세 측면으로 점진적으로 접근하려 한다. 구조개혁은 사회적 대타협이 필요하다. 공공부문 일자리에 대한 논란이 많지만 결국 일자리는 기업에서 나온다. 노동시장 현실이 워낙 좋지 않아 공공부문이 마중물 역할을 하고 민간으로의 연결고리를 찾겠다는 것이다. 공공부문 일자리도 구조개혁과 함께 가야 한다.

▷이종화 교수=분배구조 개선 정책이 성장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 단정할 수 없다. 분배 악화의 근본 원인은 기술 고도화와 무역 확대다. 이 부분을 규제하면 분배는 개선되겠지만 성장률은 더 떨어진다.

▷김 부총리=‘분배만 개선하면 성장할 수 있느냐’는 지적에 동의한다. 그러나 1인당 국민소득이 10년 이상 2만달러대에 머물고 있다. OECD 회원국은 보통 2만달러에 진입한 뒤 7~8년 만에 3만달러대로 들어섰다. 압축성장에서 비롯된 구조적 문제를 풀어야 한다.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서는 분배 문제를 다루지 않을 수 없다.

▷유병규 산업연구원장=공급 과잉에 따른 한계기업 구조조정 요인이 많다. 4차 산업혁명도 기업 구조조정을 촉진할 것이다. 이에 대비해 기업 스스로 주도하는 사전적 구조조정 시스템이 필요하다.

▷김 부총리=고민 중이다. 앞으로 산업경쟁력 강화 관계장관회의에서 들여다봐야 한다. 조선, 해운, 건설, 유화 부문 등은 관심을 두고 지켜보고 있다. 기업 주도의 사전 구조조정은 당연히 필요하다. 채권은행도 역할을 해야 한다.

▷차은영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정부가 가계 빚을 탕감해주겠다고 하는데, 도덕적 해이(모럴해저드)가 커질 우려가 있다. 빚을 탕감받고 다시 빚을 내지 않겠는가. 단기처방 성격의 대책에 불과하다. 입에 쓴 대책이 필요하다.

▷김 부총리=이번 가계부채 대책은 일부 채무조정과 극히 일부 채권 상각인데, 모럴해저드를 최소화하기 위해 신경썼다. 채무조정을 받은 사람들에게 경제활동을 통한 재기의 기회를 주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채무조정자에게 일자리를 연결해주는 시스템을 마련하는 방안을 대책에 담았다.

▷차 교수=잠재성장률이 떨어지고 있다. 생산성을 끌어올리려면 구조개혁이 필요하다. 핵심은 노동시장이다. 실현 가능한 고통분담 방안이 나와야 한다.

▷김 부총리=잠재성장률 제고를 위한 고통 분담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사회적 대타협을 통해 다같이 풀어야 한다. 정부도 올해 예산 편성을 하면서 11조5000억원 규모의 지출 구조조정을 했는데 굉장히 힘든 일이었다. 각 부처는 자체 구조조정을 하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김종훈 한미글로벌 회장=창업 자금 확보 방안으로 ICO(가상화폐공개)가 거론되자 정부가 위험하다는 이유로 이를 전면 금지시켰다는 얘길 지인에게서 들었다. 창업 기업가들이 좌절하고 있다. 창업 활성화를 위해 기업이 할 수 있는 것만 정하는 ‘포지티브식 규제’ 대신 할 수 없는 것만 법에 명시하고 나머지는 원칙적으로 허용하는 ‘네거티브식 규제’가 필요하다.

▷김 부총리=어린이들이 자유롭게 뛰노는 모래놀이터처럼 창업자가 새로운 아이디어를 마음껏 시도하게 하는 ‘규제 샌드박스’를 마련하겠다. 신산업 분야는 아예 규제를 만들지 않겠다는 것이다. 블록체인에 규제 샌드박스 원칙을 적용할 수 있을지 보고 있다. 네거티브식 규제로 바꾸는 것은 진짜 어렵다. 담당자에게 법률을 갖다주면서 포지티브 규제를 바꿔보자고 했는데 안 되더라. 우리 대륙법 체계와 부딪혀 힘들다. 우선은 시장이 볼 때 ‘저 정도면 정부가 추진력이 있구나’라고 생각되는 것들을 뽑아보겠다.

▷곽창호 포스코경영연구원장=정부가 고용 안정에 대해서는 매우 구체적인 정책을 내놓고 있는데, 노동 유연성과 관련해선 그런 정책이 없다. 한국형 고용안정·유연모델을 제시하고 있는데, 고용 안정이 어떤 분야에서 어느 정도 달성돼야 유연성까지 감안한 모델을 내놓을 것인가.

▷김 부총리=사회적 논의와 타협이 필요한 사항이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것이다. 예를 들어 실업급여 지급기간이 OECD 평균 정도가 되면 노동 유연성 문제를 논의할 것이냐, 이런 것을 얘기해야 한다.

▷김기영 한국기술교육대 총장=사회 분위기가 바뀌어야 한다. 대학생들이 전부 안정지향적이다. 다들 공무원이 되겠다고 한다. 서울대와 미국 미시간대 학생들을 비교한 자료를 보면 서울대생은 수용적으로 사고하는 비율이 높은 데 비해 미시간대는 비판적, 창의적으로 사고하는 학생이 많다. 청년들이 성취지향적으로 창업에 도전할 수 있도록 돕는 정책이 필요하다.

▷김 부총리=창업보다 대기업, 대기업보다 공무원을 더 원하는 것은 사회보상체계가 그렇기 때문이다. 청년들이 정말 스스로 하고 싶은 일을 찾도록 돕는 플랫폼을 구축해줘야 한다. 나도 공무원이 되고 나서 정말 하고 싶은 일이었는지 확신이 없었다. 혁신창업 종합대책에 여러 내용을 담고 있다.

▷강인수 숙명여대 경제학과 교수=선의와 감동만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결국 입법화와 제도화가 필요하지만 정치 현실이 어렵다. 사회적 대타협은 국회 내에서라도 가능한 방안을 마련하고 설득하는 게 우선 이뤄져야 한다.

▷김 부총리=공감한다. 사회적 대타협 방법은 개인적으로 고민을 많이 했지만, 여러 정치 구도 등을 봤을 때 굉장히 어려운 문제다.

▷강 교수=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이 시작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다음달 방한하는데, 지금까지 정부의 대응 태도로는 난망해 보인다. 양국 정상이 만났을 때 통 크게 합의를 이끌어내야 한다.

▷김 부총리=2차 한·미 FTA 공동회기 때 우리 전략이 1차 때와 다소 차이가 있었다. 물론 정상 간 회담에서 큰 문제가 풀리면 좋다. FTA는 첫째 양측 주장 내용을 조정하고 둘째는 협상 전략, 셋째는 국민들과의 소통이다.

김일규/오형주 기자 black041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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