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임기자 칼럼] 국립민속박물관을 왜 세종시로?

입력 2017-10-25 18:08  

서화동 문화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 순종은 1909년 11월1일 창경궁의 양화당과 명정전, 부속 회랑 등을 전시실로 꾸며 제실박물관을 열었다. 이렇게 시작된 한국 박물관의 역사는 해방 후인 1945년 12월 조선총독부 박물관을 인수한 국립박물관(현 국립중앙박물관), 이듬해 국립민족박물관(현 국립민속박물관) 개관으로 이어졌다. 역사·문화 중심의 국립중앙박물관(중박), 민족 생활사 중심의 국립민속박물관(민박)을 국가대표 박물관으로 꼽는 이유다.

이 가운데 민박이 요즘 논란이다. 정부가 급작스레 민박을 세종시로 이전하겠다고 해서다. 민박은 2031년 완료를 목표로 추진 중인 경복궁 복원계획에 따라 이전이 불가피하다. 이 때문에 정부는 중박이 있는 용산공원으로 민박을 이전한다는 기본 방침 아래 2000년 이후 한국개발연구원의 예비타당성 조사와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의 기본계획 연구용역, 적정성 검토까지 마친 상태다.

느닷없는 세종 이전 추진

이에 따라 총사업비 2045억원을 들여 연면적 3만3869㎡ 규모로 건립하기로 하고 예산 확보, 경복궁 복원에 따른 민박 철거 일정 조정 등의 과정도 거쳤다. 민박은 지난해 12월 용산의 건립 용지가 부족한 점을 감안해 우선 경기 파주에 개방형 수장고를 2020년까지 마련하고, 핵심 시설인 박물관 본관은 2030년까지 이전하겠다고 발표했다.

그 직후 문체부와 국정기획운영위원회가 세종시 이전을 추진한다는 계획이 불거져 나왔다. 명분은 지역 간 문화 균형발전과 문화 다양성 확보다. 충분한 사전 검토나 논의는 없었다. 학계나 박물관계는 물론 국회 소관 상임위원회도 그냥 ‘패스’했다. 문체부 당국자는 “민박의 세종시 이전은 확정된 것”이라며 “수도권에 집중된 문화인프라를 지방으로 분산하기 위한 결정”이라고 밝혔다.

문제는 이전 효과다. 민박은 한민족의 5000년 생활사를 집약해놓은 문화현장이자 연간 300만 명 가까운 관람객이 찾는 명소다. 그중 절반은 외국인이다. 지난해 민박의 외국인 관람객은 180만 명으로, 서울 4대문에서 벗어나 있는 중박의 10배에 달한다. 이런 민박이 세종시로 내려가면 2400만 명에 달하는 수도권 시민은 소중한 문화시설을 통째로 잃어버린다. 박물관 하나 보려고 세종시까지 갈 사람은 많지 않다. 문체부는 민박이 용산으로 옮겨가더라도 관람객 급감은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중박, 민박, 전쟁기념관을 ‘박물관 클러스터’로 묶을 경우 유인 효과는 지금보다 훨씬 커질 수 있다.

관람객 2400만 대 25만

세종시와 인근에 문화 인프라가 없는 것도 아니다. 인구 20만 명 남짓한 도시의 박물관단지에 이미 어린이·자연사·국가기록·디자인·디지털·건축박물관 등의 건립을 추진 중이다. 세종시에서 가까운 충남 공주와 부여에는 각각 국립박물관이 있고, 공주민속극박물관도 있다.

문화계 인사들은 강력 반발하고 있다. 역대 국립민속박물관장과 국립중앙박물관장, 문화계 원로와 전문가들의 모임인 ‘민족문화사랑동행’은 최근 포럼을 열고 세종시 이전 계획 철회를 요구했다. 대통령에게 청원서도 보냈다. 이들은 “연간 300만 명이 찾는 민박을 지역 균형발전이라는 명분으로 인구 25만 명 내외의 세종시에 뿌리째 뽑아 이전하려는 것은 국제적 망신이며 문화적 손실”이라고 주장했다.

시설이 아무리 좋아도 이용객이 적으면 효과를 보기 어렵다. 17년간 준비해온 계획을 하루아침에 뒤집은 이 결정이 과연 좋은 결과를 낼까. 원전 중단 사례처럼 공론화 과정이라도 거쳐야 하지 않을까. 이런 식으로 민박을 옮겨서 얻을 것이 뭘까.

서화동 문화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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